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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

  • 기사입력 2021.09.12 23:27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

                          김영만 

생은 두근거림이다

목구멍으로 기어오르는 것은

허무함이란 이름의 어지럼증이다

적막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때때로 어둠이었다가 천년의

절벽이었다가, 그럴 때마다

일기장 귀퉁이에다 사랑을 꾹꾹 눌러 썼다

불현듯 나를 밀어낸 것은

소리 없이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었다

자잘하게 부서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섬진강 기수역에 나를 풍덩 던진다

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

마침내 사지가 풀려 뜨거운 피 스며들어

쫑긋쫑긋 솟아나는 푸른 귀들

사지가 풀리면 저런 모양이 되는 걸까

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그늘의 뼈를 버리는

오지게 마른 한 생.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을 기수역이라 한다. 바다와 강이 만나 서로의 성격을 버리고 하나가 되는 곳에는 영양이 풍부하여 온갖 고기들이 살아가는 풍요의 장소다. 보양식의 으뜸인 장어를 비롯하여 숭어, 황어, 참게 등과 벚굴 재첩이 서식, 사람의 삶을 풍족하게 해준다. 대표적인 곳으로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이 있으며 그 중 섬진강 하류는 오염되지 않는 청정해역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데 망덕포구는 기수역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으로 풍요의 고장이다. 한마디로 무엇이든지 하나로 통합되면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그곳에는 어우러진 삶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땅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협동의 동물로 서로 만났을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을 얻게 되고 산다는 의미를 알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뤄내면 오만해져서 담을 쌓는다. 환하게 열어놓으면 불안하고 남을 의식하여 자신을 가두게 된다. 만족을 몰라 자기만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 가둬진 줄 모르고 자신의 벽을 만든다. 김영만 시인은 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고 외쳤다. 허무함을 느낀다는 것은 혼자라고 생각되면서부터인데 남과 내가 함께라면 알지 못한다. 적막감에 어지럽게 살다가 절벽이라 느끼며 절망하고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몸부림치다가 불현듯 어둠을 알았다. 그 어둠을 씻어내기 위하여 기수역에 풍덩 몸을 던졌을 때 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지고 두 개가 하나가 되어 뜨거운 피가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햇살을 만나 야멸치게 그늘의 뼈를 버리고 오지게 마른 한 생이 새로운 눈을 뜬 것이다. 누구나 보는 사물에서 삶의 현묘함을 읽어 냈다. 그래서 시인이 필요하고 시인의 존재야말로 삶을 가꾸는 이정표다고 큰 소리 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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