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영정사진 찍기

  • 기사입력 2020.11.28 09:27
  • 기자명 시인 이오장
  © 시인 이오장

영정사진 찍기
           정근옥 (1951년~ )

 
노인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보름달처럼 웃고 있다
이윽고 잠잠한 바다에
정박된 초상
멀고 먼 길을 돌아온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오른다
회나무 잔가지에 어린
아름다웠던 사랑의 추억 더듬으며
훨훨 날아오른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놓여진 명도길을
흰 백합을 꺾어 지그시 가리키더니
고달픈 삶의 무게를 털어버리고
흰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사진이 없고 문자만 있던 시절에는 사람이 죽으면 한자로 그 사람을 요약하여 지방으로 영정에 올려 장례를 치렀다. 현대에 이르러 영정이 사진을 대신하여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모두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사람은 죽어서까지 남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는 본능적인 인성이 있어 후인이나 주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인의 모습을 좋은 모습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풍토는 누구에게나 같아 생전에 단장하고 웃는 모습을 미리 찍어둔다. 그 심정은 인생의 허무함을 알게 되어 다소 허탈한 웃음일 것이 분명하다. 정근옥 시인은 그러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노인의 심정을 장자의 나비에 접목해 ‘삶은 꿈이요, 허상이며 허무하다’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한 편의 시에 담아내어 사람의 생은 허무 그 자체인데 욕망과 애증의 갈등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인생관을 펼친 것이다. 이러한 관찰은 그 장면을 보지 않아도 자신이 어느 정도의 나이에 들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시인의 눈에 비쳐 연출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은 사물과의 대면에서 본질과 실존을 감지하여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