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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있으되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김병총의 소설 고사성어 (113) 누란지위(累卵之危). 원교근공(遠交近攻)(4)

  • 기사입력 2012.06.10 04:39
  • 기자명 김병총
그래도 왕계는 범수의 그런 주장이 터무니없어 보였다.

“그분은 이미 멀리 떠나버렸잖습니까.”
“위염께선 수레 속에 사람이 있다는 의심을 분명히 하고는 지나쳤습니다. 지혜는 있으되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지요. 그는 반드시 돌아와 수레 안을 뒤질 것입니다.”

범수는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왕계는 긴가민가 하면서 10리쯤 더 갔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나더니 말을탄 위염이 기병들을 거느리고 되돌아 왔다.

“게 섰거라!”

왕계는 감탄부터 했다. ‘장록(범수)은 무서운 인물이다!’ 위염은 다짜고짜 난폭하게 수레 속을 뒤지더니, 왕계를 다시 한 번 무섭게 노려본 후에 가까스로 기병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후우! 큰일날 뻔 했다!“

범수를 다시 찾은 왕계는 수레 안으로 오르게 한 뒤 보물단지 모시듯 서둘러 함양으로 들어갔다.

‘이분은 틀림없이 큰일을 해낼 분이시다!’ 사신 갔던 일을 진왕에게 보고한 왕계는 곧장 범수 얘기를 꺼냈다.

“위나라에 장록이라는 훌륭한 인물이 있기에 마침 수레에 태워 데리고 왔습니다.”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던 진왕은 갑자기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두시오. 과인은 세객 따위의 말은 믿지 않소. 게다가 유세를 들을 처지도 아니지 않소!”

당시는 진의 소왕 36년이었다. 그 동안 진나라는 남쪽 초나라 2개 군을 빼앗은데다, 초나라 회왕을 억류해 객사까지 시켰고, 동쪽의 제나라 민왕마져 깨뜨렸으며, 그 힘을 믿고 한때 제(帝)라 칭하며 거들먹거리기도 한데다가, 막강한 군사력으로 삼진(三晋:韓. 魏 趙)까지 괴롭히고 있던 터라, 왕계로서는 진왕의 ‘세객 불 필요’ 주장은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는 나라 왕으로서의 기고만장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들을 처지가 못된다’고 소리친 것은, 재상 위염과 화양군이 왕의 외삼촌이요, 경양군과 고릉군은 왕의 친동생들로서 그들 끼리 똘똘 뭉쳐 진나라의 세력을 부리고 있었는데, 장록이 아무리 훌륭한 경륜을 지닌 인물이라 하더라도 저들이 있는 한 쓸 데 없는 면담일 수 밖에 없다는 진왕의 한탄어린 고백으로 왕계는 들어야 했다.

진왕이 자리를 떠 버렸으므로 왕계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범수는 속절없이 초라한 숙소에서 부실한 음식을 들며,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따분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간혹 얼굴을 디밀던 왕계가 더욱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띠고 찾아왔다.

“벌써 한 해가 후딱 지나갔구려.”

범수가 비꼬자 왕계는 더욱 몸둘 바를 몰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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