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코로나 입방정

  • 기사입력 2021.05.17 23:06
  • 기자명 수필가 이석복
▲이석복, 차세대미래전략연구소 이사장     

작년 11월 마지막 주에 어릴 때부터 오랜 친구들과 그해 마지막 골프회동을 가졌었다. 그중 한 친구가 유난히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며 운동 후 샤워도 않고 저녁도 집에 가서 하자고 해서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내심 그렇게까지 예민할 필요가 있겠냐고 투덜거렸었다. 그런데 며칠 후 출타 중 보건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함께 골프를 한 친구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밀접 접촉자로서 당장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에 들어가라는 것 이었다.

그 시간 나는 지인과 점심약속이 있어서 이동 중 이었다. 약속장소가 코앞인데 만나서는 안되는 것이 ‘코로나-19’의 예방원칙이다. 그래서 급히 전화로 사정을 이해시킨 후 보건소로 가서 신고를 하고 콧속 깊은 곳까지 면봉을 집어넣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체온기와 운동기구 그리고 KF-94 마스크, 손소독제, 1회용 비닐장갑 등 한 보따리를 주고 자가 격리 앱(APP)을 핸드폰에 설치해 주면서 열흘간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건강 상태를 보고하라고 안내를 해주었다.

집으로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문을 열고들어서는데 이미 집사람도 마스크를 쓴 채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맞아 주면서 서재에서 격리생활을 하도록 이부자리까지 준비해 두었다는 것이다. 한숨을 돌린 후 서재에서 우선 감염되었다는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해도 받지 않아서 다른 두 명에게 전화를 하니 나와 똑같이 인정사정없는 가족격리를 치루면서 감염된 친구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감염된 친구가 80세의 노령에다 기관지가 약한 것이 특히 걱정이 되었고 골프 친 날 속으로 감염걱정이 지나친 것 아닌가하여 투덜거렸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작년 2월 20일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parasite)』으로 한국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4관왕의 쾌거를 이루고 귀국하여 청와대 오찬에 초청 받았을 때 대통령내외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파안대소(破顔大笑)한 날 코로나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가 나왔던 것이 기억났다. 소위 세계 최고의 ‘K-방역’으로 코로나-19가 한국에서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문대통령이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하기가 무섭게 하루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었다. 그때 언론에 등장한 용어가 ‘코로나 입방정’인데 그 사전적 의미가 “버릇없이 수다스럽게 지껄이며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가볍고 점잖지 못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으로서 한마디로 ‘천박한 언행’이라고 할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경박한 ‘입방정’이 국민에게 화(禍)로 돌아온 것과 같이 내가 비록 속으로 투덜댔지만 그것이 화가 되서 가뜩이나 기관지가 약한 친구가 감염된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自責)이 되었다. 물론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입방정의 예로 고속도로에서 상습적으로 차가 정체되는 지점에서 통행이 원활 할 때 “야아, 오늘은 안 밀리고 확 뚫렸네”라고 말한 후 몇 십 미터 못가서 차가 밀리던 경험이 있어 그런 말까지도 삼가하던 터였는데 후회가 막심했다.

검사를 받은 다음날 전화문자로 음성(陰性)이라고 통보 받았고, 시(市)에서는 먹을 거리도 한 상자 가득 보내왔다. 자가 격리가 끝나는 전날에도 지시받은 대로 또 검사를 해서 다행히 음성 통보를 받고 위험을 벗어났다. 그날 확진받은 친구는 전화기를 집에 놓고 입원해서 통화가 안되었던 것으로 간신히 부인과 연락이 됐다. 그 친구는 거주아파트 단지 내 사우나에서 감염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그 친구는 급성 폐렴으로 악화되어 고비를 못 넘기고 세상을 하직했다. 장례 절차도 없었고, 화장터에도 아들 한 명만 입회했다고 들었다. 친구들은 물론 이지만 부인과 자녀들의 얼굴도 못보고 그렇게 허망하게 모두의 곁을 떠난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의 ‘코로나 입방정’은 우리나라 뿐 만이 아니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방역의 기본인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 후 미국의 코로나 확진 자가 중국을 앞지르기 시작해 세계 최고 확진자와 사망자를 기록했다. 그가 비과학적이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면 곧 반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심지어 “백신 없어도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 ‘입방정’으로 21만 명이 죽는 비극적 사태를 미국인이 겪어야 했다. 지도자는 말조심해야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리자 “내가 코로나 걸린 건 신의 축복(a blessing of God)”이라는 ‘입방정’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영국의 존슨 총리도 작년 3월 “우리는 매우 잘 준비돼 있다”고 코로나를 가볍게 여기다가 영국의 의료체계가 붕괴될 정도로 만연되었었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5개 지역에서 진행되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3월부터 4월까지 전국을 돌며 유세를 벌였다. 그리고 힌두교 축제 ‘쿰브멜라’를 허용한 후 코로나 1일 확진자수가 무려 40만명이 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1일 사망자수가 연일 3000명대를 기록하여 세계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의 비극은 안일하게 판단한 모디총리의 ‘입방정’에 책임이 있다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국가 지도자의 경박한 ‘코로나 입방정’은 쉽게 추스를 수 없는 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코로나 입방정’ 후 K-방역도 더 이상 자랑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백신 주사약 확보와 접종률도 세계 빈민국보다도 못한 처지가 되자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정부가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

‘코로나 입방정’의 직접적인 후유증 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간접적인 후유증이다.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위해 코로나 위로금 명목으로 심지어 초등생 용돈 수당까지 돈을 뿌려대니 국가부채가 1,000조원을 넘기게 되고 이제는 이자도 빚  내어서 갚아야 할 위험 수위까지 넘실대고 있다. 차세대 청년들은 국가사회의 혜택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정치인들의 자제력을 잃은 포퓰리즘 경쟁으로 쌓인 나라빚을 떠안아야 하는 불행한 세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나는 뼈가 빠지게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의 국운상승(國運上昇)을 믿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국난(國難)의 고비마다 지도자와 국민의 집단지성(集團知性)이 발휘되었다. 그 저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계속 성장해온 불굴(不屈)의 국가이다. 거기에 미국이라는 선량한 동맹국을 갖는 행운도 누리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는 국가지도자의 ‘입방정’이 부채질해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악성 국난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동안 마비 되어있던 청년들의 집단지성이 깨어나고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1년 이상 계속되는 코로나-19사태에서도 나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믿는 것은 ‘입방정’이 아니라 투표로 보여주는 차세대 청년들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행동’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