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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통령의 제주4.3사건 추모사에 다시 드러난 역사편향성

  • 기사입력 2021.04.05 16:20
  • 기자명 장순휘
▲장순휘(정치학박사, 경희사이버대 교수,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이사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3주년 추념식에 세 번째로 연속적으로 매년 참석했다. 이례적이다. 거기에 국방부 장관과 경찰청장을 대동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군·경 최고책임자가 4.3 공식추념식에 배석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이들의 참석만으로도 제주 4.3사건의 군과 경찰이 반성하고 사과하러 왔다는 뜻이 된다. 문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방부장관과 경찰청장의 참석에 대하여 “당연히 해야 할 일로, 국가가 국가 폭력의 역사를 더욱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겠다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4.3사건에 대하여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은 폭동, 반란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피해자적 관점에서 일방적인 선언을 했다. 심지어 작년에는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고 역사편향성을 보여서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4.3사건의 본질을 호도(糊塗)하는 주장을 남김으로서 다시 한 번 더 역사편가르기 정치의 진수(眞髓)를 보여주었다. 이번 연설문의 표현에도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라는 애매모호한 수사를 사용하였는데 도대체 이 논리가 어디에 근거하는지  정체성과 가치관에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제주4.3사건’의 정설은 1947년 3.1절 제28주년 기념식에서 발생한 기마경찰의 어린이 부상사고가 발생하여 항의하던 중 가두시위가 되었고, 경찰의 수습이 부적절하여 군중의 항의가 이어졌던 것이 시발이 되었다. 도민들은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며 돌멩이를 던지며 쫒아갔고, 이를 오인한 경찰이 발포하여 현장에서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으면서 급격히 반경(反警)분위기가  돌았다. 결코 반정부 차원의 무장폭동으로 연결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이를 계기로 3월 5일 ‘3.1사건 대책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도민을 선동, 반경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면서 삽시간에 3월 10일부터 3월 13일까지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가 민·관 총파업에 동참하는 대혼란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당시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해방과 동시에 이미 38도선을 틀어막고 구 소련의 지배하에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공산국가 설립을 암암리에 추진 중이었고, 여기에 남조선공산당이 남한에서 미군정의 허름한 통제 하에서 온갖 공산화 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임시 민주정부수립과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5년간 신탁통치를 결정하였고, 초기에 반탁운동이 좌우합작으로 일어났었다. 어느 날 갑자기 좌익진영에서 찬탁으로 돌변하는 배신으로 말미암아 남한에서는 매일 좌우익 충돌사고가 일어나는 무정부상태(CAOS)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구 소련의 지령에 따른 남조선공산화의 기획된 혼란전술이었다. 

  결국 두 차례의 미·소공동위원회도 구 소련의 협상전략에 시간만 낭비하고 한반도 문제를 1947년 9월에 유엔으로 이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유엔총회에서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한국에 정부를 수립하라는 공식결의(1947년 11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김일성은 인구비례적용 시 남한의 인구가 많은 관계로 흡수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일방적으로 거부하였다. 이처럼 유엔총회의 결의를 위반하고 남북한 민족이 꿈꾸었던 ‘독립한 통일국가’를 망친 자는 바로 김일성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fact)이다. 완전한 공산화를 꿈꾸며 분단을 반대하는 척 했던 자가 바로 김일성이었는데 대한민국이 잘못했다는 식의 역사해석이다.

  제주4.3사건을 한 줄로 쓴다면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김달삼 등 350여명이 무장을 하고 12개 경찰지서를 일제히 기습하면서 발생한 무장폭동이었고, 단독정부수립반대와 반미구국투쟁선언 등 북조선의 주장에 동조한 무장봉기’였다고 역사적 사료가 증거하고 있다. ‘제주4.3사건’은 1998년 11월 2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제주 4.3은 공산폭동이었다.”고 인정한 사건이다. 더욱이 무장폭동의 주모자 김달삼은 1948년 8월 25일 월북하여 국기훈장 2급을 수여받았고, 1950년 3월에 게릴라로 6.25전쟁 전 침투하였다가 정선지역전투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비문에 ‘남조선혁명가’라고 새겨져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던 무장폭동의 수괴(首魁)였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다만 군과 경찰의 강경진압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주민들이 과도하게 발생하였고, 이에 대하여는 국가의 책임있는 사과와 합리적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수립을 부정하고 공산혁명을 위해 무장폭동을 일으킨 친공분자들은 끝까지 식별하여야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올해 추모사에서 ‘완전한 독립을 꿈꾸며 분단을 반대했다는 이유’라는 것은 4.3사건의 발생과 전개의 본질과 다른 과대허위포장이다. 오히려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으나, 반대했던 세력은 유엔결의를 거부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공산당이었으며, 그를 추종했던 공산분자들이었다. “똥 뭍은 개가 겨 뭍은 개를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야 할 역사적 진실을 뒤집어서 군·경의 양민학살로 왜곡하는 주장에 억장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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