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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롯 2의 ‘붓’은 귀태(鬼胎)다

  • 기사입력 2021.03.18 20:29
  • 기자명 장순휘 박사
▲ 장 순 휘(정치학박사, 경희사이버대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코로나19의 재앙으로 우리 뿐 만 아니라 세계가 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을 강타한 트롯의 열풍이 지친 국민들의 정서에 위로의 힘으로 동행하고 있다. 방송사마다 한동안 우습게 알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던 대중가요 ‘트롯’이 K-POP의 기세를 누르고 안방을 점령하는 이변을 보여주었다. 트롯 열풍 속에 다시 들어보는 우리 대중가요는 곡조며 가사에서 국민적 서정성과 운치 그리고 풍류를 엿보았고, 한국가요사 100년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기회가 되었다. 

  지난 11일 모 방송사의 ‘미스트롯2’가 종결되면서 최종 결선에서는 축제의 마당에 쌩뚱맞는 문제의 곡 ‘붓’을 양지은 가수에 의해 불려졌다. 결선에 진출한 7인의 우승후보들이 각자의 ‘인생곡’이라는 애창곡을 부르는 마지막 무대에서 최종 우승자가 된 양지은이 부른 노래는 ‘붓’이었다. ‘붓’이라는 곡은 2018년 9월 19일 문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서 천지를 배경을 사진을 찍는 모습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한 연설을 듣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노래라고 작사자 류선우씨(52)가 방송에서 말했다. 

  류씨가 남쪽 대통령의 연설에 감동을 받아 가사에 넣었다는 부문은 “평양시민여러분! 동포여러분! (중략)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라는 연설의 일부를 가사로 인용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당시 이 연설에 대한 국내.외적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취임사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경험하리라는 생각도 못한, 경험 안해도 되는’ 경악스러운 발언이었다.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라고 했다. 70여년 분단의 책임 소재가 무력으로 한반도 공산화의 무력 통일을 노린 북한 김일성에게 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산가족의 비극을 만든 자도 김일성인데 ‘헤어져’ 살았다니 말이 안되는 표현이다. 차라리 “70년을 싸우며 살았습니다”라고 했다면 진솔한 의미라도 있었을 것이다. ‘평화타령’까지는 봐준다하더라도 ‘새로운 조국’을 운운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이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사용할 용어가 아닌 것이다. 그의 반헌법적인 ‘새로운 조국’이라는 용어는 과연 무슨 뜻인지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따지고 넘어가지 않은 점도 되짚어볼 때 유감스럽다고 할 것이다. 

  분명히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중략)...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후략)”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평화통일의 역사적 사명이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제66조 ②항에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에도 대통령의 책무가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하라고 헌법에 명시했음을 무시하고 ‘새로운 조국’을 감히 언급했다는 것은 반역(反逆)을 의미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용해서는 안될 반헌법적 망발이 아닌가? 더욱이 제66조 ③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조문대로 임기 5년 중에 ‘평화적 통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주권을 명시한 『헌법』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반(反)하는 것으로 대통령직의 공무원이 주권의 행사를 마음대로 행사했다고 볼 수 있는 ‘새로운 조국이라는 언급은 청문회를 열어서 따져봐야 했었던 사안으로 사료되는데 왜 그냥 넘어갔는지 야당(野黨)의 행태가 의아스럽다.

  그리고 만들어 가지고 온 것이 ‘평양선언’의 부속합의서인 “9.19 남.북 군사합의서”라는 군사적  문서가 있다. 이것을 16일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했다고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해야 할지 아니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 해야 할지 대한민국의 국가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는 아닌지 그저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 연설의 구절을 가지고 류씨가 만든 곡이 ‘붓’이라는 곡이다. 이 곡을 살펴보니 곳곳에 반국가적·반민족적·반역사적·반국민정서적·반문화정체성의 5반(反)의 노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곡의 1절 1소절에서 “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에서 ‘그 설움’의 주체가 대한민국이라면 그건 부적절한 용어이고, 북한이 ‘그 설움’이라면 이해는 되지만 “누구로부터의 설움이란 말인가? 무슨 설움인가?”에 답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설움’보다도 북으로부터의 ‘ 끊임없는 전쟁과 도발위협’을 느끼면 살아왔다. 무슨 설움타령이란 말인가?

  특히 아연실색(啞然失色) 할 가사는 “칠십년 세월/그 까짓게 무슨 대수요”인데 “그 까짓거라니?”는 작사가 류씨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1945년 해방 후 남.북한의 분단 그리고 1948년 남.북한 정부수립 그리고 2018년까지 70년 세월이다. 그 과정에서 1950년 6.25 남침전쟁을 김일성이가 일으켜서 민족적인 비극을 만들었고, 천만 남.북 이산가족의 아픔을 남긴 것이 누구 짓이었는가? 그리고 전후 3,119건의 무장공비 침투와 국지도발(국방백서 2018)로 편히 쉴 새 없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한 집단이 어디인가? 그런 반민족 집단의 위협을 이겨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 입장에서 “그 까짓게 무슨 대수요”라는 가사는 써서는 안될 실언이다.

  또한 “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고는 그럴 듯하고 좋은게 좋다는 식인데 잊고 용서하는 것에는 무조건 화해도 있겠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는 최소의 절차가 있어야 한다. 아웅산테러(1983), KAL기 폭파(1987), 천안함 피폭(2010),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 공무원 피살(2020) 등 천인공노할 도발행위에 대하여 제대로 사과도 않는 북한을 상대로 어쩌고 어째? 정말 웃기는 가사의 노래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곡이 버젓이 ‘미스트롯2’ 무대의 인생곡으로 선택한 양지은 가수의 국민정서적·문화적 정체성을 상식선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 입은 의상도 파란색 원피스차림으로 모정당의 칼라를 선택한 것은 방송계의 어떤 의미로 재해석되지 않기를 아니기 바란다.

  그리고 “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는 백두산을 내세우며 김씨 왕조를 상징하는 메타포(metaphor)를 가지고 적어나가겠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에서 심각한 사상적 오염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친구여’라는 호칭에서 소름이 돋는 것은 역사상 이런 악마같은 또 친구가 있을까? 친구라고 부르면 친구가 되는 것인지를 류씨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이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북한이 핵무장하고, 미사일로 끊임없이 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어찌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친구의 집안에 2천 5백만이 자유도 없이 굶주리고 살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찌 생각하는가?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쏴죽이고, 수십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인권을 탄압받는 지구상 가장 끔찍한 지옥을 만든 김정은을 어찌 생각하는가?” 

2절 마지막 소절의 “한라산 구름을 화폭삼아/한 점 한 점 찍어나가세“는 북한의 지상과제인 한반도 공산화를 의미하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는 아니겠지만 기분이 편하지 않은 가사이다. 이처럼 대중문화에도 최소의 금도(襟度)가 있다. 5반(反)을 넘어서 함부로 작사.작곡을 해서는 안된다.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삶을 준 조국에 대한 국민된 최소의 예의이다.한 마디로 이 곡은 ‘귀태(鬼胎)’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곡이기에 불려져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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