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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DNA를 찾아서(13회) 몽골 제국의 후예가 이어받은 아시아 기마군단 ‘티무르 제국’

  • 기사입력 2020.12.29 00:40
  • 기자명 김석동
▲ 필자 김석동 

몽골 제국의 붕괴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한 몽골 제국은 3,000만 km2를 넘는 광활한 영토를 4개 국가ulus로 나누어 통치했다. 중국 본토와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칭기즈칸 손자 쿠빌라이의 ‘원元’을 필두로, 칭기즈칸의 맏아들 ‘주치’와 그 아들 ‘바투’는 러시아 지역에서 ‘킵차크 칸국’을, 둘째 아들 ‘차가타이’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차가타이 칸국’을, 셋째 아들 ‘뭉케’의 동생 ‘훌라구’는 페르시아·중동 지역에서 ‘일 칸국’을 각각 지배했다.

그러나 칭기즈칸 사후 내분이 일어나면서 이들 4개 국가는 사실상 분리된 개별 국가가 되어 관계가 단절됐다.

칭기즈칸과 그 후손이 건설한 이 세계 제국은 14세기 중반경 정치적 분열과 내분·봉기에 의해 차례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마군단 국가의 전례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원’은 쿠빌라이의 전성기 이후 1330년을 전후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결국 1368년 ‘명明’에 나라를 넘겨주고 몽골 고원으로 쫓겨났다. 일 칸국도 1330년대부터 전쟁과 혼란이 이어지다 1353년 80년 만에 막을 내렸다. 러시아를 250년간 지배하면서 비교적 오랜 기간 존속한 킵차크 칸국 역시 내분과 피정복 민족의 반란 등으로 1480년 멸망하고 말았다.

동서 교역로인 비단길에 위치한 차가타이 칸국은 유목민족이 주류를 이룬 데다,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하던 차에 권력 투쟁으로 인해 혼란과 불안정이 지속되다 1334년 이후 분열됐다. 이에 따라 동서를 잇던 비단길마저 차단됐다.

차가타이 칸국의 ‘카간 칸’ 사후, 톈산 산맥 북방 초원의 ‘모굴리스탄’ 부족에서 ‘투글룩 테무르’가 칸으로 등장하여 오늘날의 신장 웨이우얼 지역 일대에 ‘모굴Moghul 칸국’을 세웠지만, 그가 죽자 후손들이 분열되면서 다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몽골 제국을 이어받아 유라시아 대초원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여러 나라들을 건국해서 곳곳에서 그 명맥을 이어갔다.

중앙아시아에서 몽골 제국을 재건한 ‘티무르 제국’

혼란의 와중에 있던 차가타이 칸국에서 1336년 ‘철의 군주’라 불리는 ‘아미르 티무르Amir Temur, Tamerlane’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인 사마르칸트 부근 케쉬에서 태어났다. 그는 몽골 귀족 바를라스계 가문이었으나, 그의 선조가 차가타이의 통치자에 대항하다 몰락하는 바람에 사마르칸트 지역에 정착해 살면서 이슬람화된 투르크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티무르는 타고난 용맹과 지략을 바탕으로 어릴 때부터 부족간 투쟁이 지속되는 혼란 속에서 전쟁터를 전전하며 성장했다. 그는 몽골 제국 재건을 기치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중앙아시아의 트랜스옥시아나 일대의 유목집단을 통합하여 1370년 ‘티무르 제국’을 세웠다.

이후 티무르제국의 기마군단은 티무르의 지휘하에 끊임없는 원정에 나섰다. 1370년 모굴 칸국 원정에 이어 1372~1373년에는 호라즘 원정, 1375~1377년에는 킵차크 원정, 1381년에는 아프간 원정, 1384~1386년에는 이란 원정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제국을 확장해 나갔다.

티무르는 칭기즈칸이 이루었던 실크로드의 대통일을 다시 이루기 위해 정복 전쟁을 계속했다. 실크로드와 제국을 보호하기 위해 1398년 북인도의 델리를 정복한 데 이어 1399년부터는 서아시아 지역을 향해 진군하면서 7년에 걸친 대원정에 나섰다. 티무르 군은 중동 일대를 점령한 후 드디어 당대 최강의 오스만 제국과 격돌하여 1402년 앙카라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오스만 군을 섬멸해버렸다.

10만의 유럽 십자군을 격파하고 유럽으로 진격하면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던 오스만 제국의 제4대 술탄 바예지드Bayezid는 이 전쟁에서 패전하여 포로가 됐다. 이로 인해 유럽은 오스만 제국의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오스만 제국으로 인해 끊어졌던 실크로드도 다시 부활하게 됐다.

티무르는 연이어 1404년 실크로드의 또 다른 핵심 축인 명나라 원정에 나섰으나, 1405년 67세의 일기로 시르다리야 강변의 오트라르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그의 무기는 천재적인 군사 전략과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그가 직접 지휘한 강력한 기마군단은 적지에서 치러진 총 170일간 전투에서 단 하루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는 33세때부터 원정을 시작하여 34년간을 말 위에서 직접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군대가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에 해당하는 4만 km에 이르렀다. 병사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공적에 따라 엄청난 전리품을 받았고,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의 가족들은 평생 국가가 먹여 살렸다. 때문에 병사들은 티무르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따랐고, 그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 티무르 박물관(타슈켄트)  

티무르 사후에 그의 후계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티무르 제국은 급속히 분열됐다. 티무르의 아들 할릴 술탄, 아들 샤루흐, 이어서 샤루흐의 아들이자 티무르의 손자인 울룩벡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제국은 형제간에 분할되어 약화됐다. 이후 1526년 티무르의 5대손인 바부르에 의해 인도에 무굴 제국이라는 또 다른 몽골 제국의 나라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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