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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석종형 승탑과 8각 원당형 승탑

  • 기사입력 2020.04.24 14:00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가

문화재 :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 울주 망해사지 승탑(보물 제173호)/ 울주 석남사 승탑(보물 제369호)/ 청송사지부도(울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

소재지 : 울산광역시 남구 두왕로 277-0 외/울산 울주군 청량면 망해2길 102 (율리)/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산232-2번지/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107-4번지

부도는 도의 선사 부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라 일반형 석탑의 통례인 사각형의 2층 기단 위에 앙련 굄 1석을 놓고, 8각 몸돌과 지붕돌을 조합한 양식이다. 고려 시대에는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정토사 흥법국사탑,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등이 대표적이고 조선 시대에는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 복천사 수암화상탑, 구례 연곡사 서부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 © 정진해

시대별 대표적인 승탑은 8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등의 기단부와 몸돌 괴임대, 몸돌, 지붕돌, 상륜부까지 모두 8각으로 조성되어 차례로 쌓은 것으로, 전체적인 평면이 8각인데 이러한 형식의 승탑을 ‘8각 원당형’이라 부른다.

울산시에는 석종형 사리탑과 8각 원당형 승탑 등 두 종류의 형태를 갖추 탑이 있다. 석종형 탑인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과 청송사지 부도는 같은 석종형 탑이지만, 형태나 시대는 다른 유형이다. 태화사지 사리탑은 우리나라 석종형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표면에 십이지상이 새겨져 있고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태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은 1962년 5월 11일 중구 태화동 반탕골 산비탈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마을 주민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곳이 옛 태화사 터였다. 언제 폐사되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범우고>와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리탑은 직사각형 대석 위에 올려져 있다. 이 대석은 사리탑이 발견된 주변에서 함께 발견되었으나 형태나 크기로 봐서 사리탑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종형의 탑은 바닥이 닿는 면부터 위로 갈수록 좁아져 상부가 뾰족하게 돌출되었다. 탑의 중상단에 감실형 공간을 만들었는데 높이 30cm, 깊이 29cm, 폭 27cm에 이른다. 감실 외부에는 빗물이 감실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수구가 있다. 감실 아래로는 탑의 중하단을 돌려가며 십이지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십이지상은 중국 율력체계에서 사용되는 간지에서 뒤쪽에 붙은 열두 가지 글자를 말했지만, 불교의 전래와 함께 언제부터 해당 동물을 의미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십이지상이 우리 문화 한 주제로서 확립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 이후에 방위신인 열두 동물로 상징화된 십이지상이 능묘의 호석, 석탑, 석등, 수미단, 귀부, 부도 등 불교적 건축물에 나타나고 있다. 특히 능묘의 십이지상은 매우 외향적이고 과시적인 형태를 띠지만, 불교 건조물에서의 십이지상은 기단부의 비좁은 공간에 춤추는 도무상, 앉아 있는 좌상, 서 있는 입상, 평복을 입은 좌상 등 다양한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태화사지 사리탑 감실 아래쪽에 오상(말)과 반대쪽 자상(쥐)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의 간지 순서로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많이 마모는 되었으나 상반신은 모두 나신이며 합장 혹은 한 손을 들거나 지물을 들고 있는 등 다양한 모습이다.

사리탑은 발굴되어 경남도청으로 옮겨 관리하다가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되면서 울산 학성공원 내에 전시되어 있었다. 2011년 울산박물관이 개관되면서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실내에 전시되고 있다.

울산 지역에 또 한 곳의 석종형 승탑은 ‘청송사지 부도(울산시 유형문화재 제3호)’이다. 옛 청송사지에는 조선 후기의 승탑으로 조각이 뛰어나다. 현재 3기가 남아 있는데 모두 조선 후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석종형 승탑이나 세부 조각과 구성이 조금씩 다르다. 지대석 위에 기단석을 얹었는데, 기단석의 앞면에 신장상의 머리 부분만 조각되었고, 뒷면에는 수신상을 음각하였고 좌우에는 화문을 양각하였다. 기단 위에는 복엽복련화대과 단엽앙련화좌대를 받쳐 석종형 탑신을 올렸다. 탑신 아랫부분에 테두리를 두르고 광명진언(光明眞言)을 상징한 고사리의 문양을 새기고 상단에는 연꽃 봉오리를 새겼으며 이 봉오리 밑의 탑신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다.

중앙에 있는 승탑은 지대석 위에 사각형의 기단을 놓고 각 면에는 4개 구의 구획을 나누고 안쪽에 화문을 돋을새김하였다. 기단 위에 복련과 앙련 위로 석종형 탑신을 놓았는데, 탑신 아랫부분은 원 내에 당초문으로 장식되었다. 탑신 중앙에 ‘瑞應堂眞 大師(서응당 진협대사)’라는 당호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나 진협대사가 어느 시대의 승려인지 알 수 없다. 오른쪽 승탑은 기단부 없이 탑신만 있는데, 표면에 별다른 문양이 없다.

망해사지 승탑(1)  © 정진해

울산 지역에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 형을 따고 있는 승탑도 있다. ‘망해사지 승탑(보물 제173호)’은 신라 헌강왕의 재위 기간인 875년∼88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망해사 법당 서북쪽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는 승탑지에 동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기의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1960년대 전만 하여도 무너져 있었는데 지금은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

 망해사지 승탑(2) © 정진해

두 승탑의 전체 규모나 조성 양식, 세부의 조각 수법이 같으나 서쪽 승탑과 비교해 동쪽 승탑이 손상된 부분이 더 많다.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단면 8각의 기단석은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대석은 2장의 돌로 짜 맞추었고 중대석과 상대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하대석 아랫돌은 8각의 면마다 덮개돌과 얕고 각진 굽을 위아래로 새기고 가운데에 측 연화문을 오목새김 하였다. 하대석 중간 돌에는 모서리마다 꽃잎이 아래로 향한 복련을 아랫돌 모서리에 맞춰 새겼다. 연꽃 안에는 나비의 더듬이 모양의 무늬와 삼산 모양의 귀꽃이 장식되었다. 연꽃무늬 위에는 1단의 각진 굄을 새겼고, 다시 낮은 3단의 각진 굄을 새겨 중대석을 받쳤다. 중대석은 각 면의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을 뿐 아무런 조식이 없다. 상대석은 하대석 윗부분처럼 단면 8각의 각진 받침을 아랫부분에 3개의 층간을 두었다. 가장 위쪽의 높직한 1단 받침은 하대석의 맨 아래 1단과 대칭이 되지만, 중대석과 만나는 받침은 2단으로 하대석의 낮고 가진 3단의 굄보다 1단이 적다. 상대석 옆면에는 단엽의 연꽃이 아래위로 피어있는 앙련을 모두 16개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윗면에는 4분원의 둥근 굄을 조각하고서 그 위에 8각의 몸돌 굄돌을 올려놓았다. 몸돌 굄돌은 받침돌이나 몸돌과는 다른 돌로 만들었는데, 아랫부분에는 1단의 굽을 돌렸고, 윗부분에는 큼직한 덮개돌 모양을 조각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면마다 측 연화문을 오목새김 하였다. 굄돌의 덮개돌 모양 윗면에는 꽃잎이 여러 장인 복엽의 연꽃무늬 24개를 복련으로 둘러 새겼다. 그 위에 각진 1단 굄을 위아래에 얕게 새기고 4분원의 둥근 테두리 장식을 그사이에 조각한 굄을 마련하여 몸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단면 8각의 몸돌에는 각 면의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가지런히 돋을새김하였다. 윗면에는 빛이 들어오도록 옆으로 길게 만든 교창이 오목새김 되었고, 문짝 모양인 문비는 4면에만 새겨져 있다.

망해사지 승탑(3)   © 정진해

지붕돌의 처마와 추녀는 수평으로 넓은 편인데, 전각마다 약간의 반전이 표현되어 있다. 각 전각에는 위아래에 2개, 그 좌우에 2개씩, 모두 6개의 작고 둥근 구멍이 있는데, 풍경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인다. 상륜부에는 단면 8각의 1단 굄을 새겨 위를 받치도록 하였고, 이 굄의 각 귀퉁이에서 전각으로 이어지는 내림 마루인 우동은 높게 표현되었다. 상륜부는 현재 모두 없어진 상태이다.

울주 석남사 승탑  © 정진해

망해사 승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석남사 승탑(보물 제369호)’이 있다.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원당형의 모습이다. 8각의 하대석은 단면이 8각인 지대석 위에 놓였는데, 윗단과 아래 단으로 구성되었다. 아래 단에는 4면에 사자상이 돋을새김 되었고, 윗면에는 1단의 둥근 굄이 새겨져 있다. 단면 8각인 윗단의 아랫면에도 1단의 받침이 조성되었다. 윗단의 옆면 전체에는 구름무늬가 돋을새김 되었고, 윗면의 가운데 부분에는 높고 둥근 굄과 낮고 각진 굄을 새겨 가운데 받침돌을 받치게 하였다.

중대석은 단면이 8각이지만, 북 모양인 고복형이어서 위아래 부분은 좁다. 각 면에는 좌우와 위아래에 안쪽을 향해 낮게 솟은 꽃 모양 1구씩 오목새김 하였으며, 안의 가운데에는 꽃잎이 4장인 꽃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에는 모서리마다 하나의 꽃잎이 위로 솟아 있는 앙련이 장식되었는데, 연꽃무늬 사이에 또 하나의 꽃잎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밑면에는 1단의 각진 받침이 있고, 윗부분은 덮개돌 모양이며,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마련한 각진 8각의 1단 굄이 있다.
8각인 몸돌에는 면마다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고, 위아래에는 선을 돌렸다. 앞면과 뒷면은 다시 길고 네모난 테두리를 오목새김 하였는데, 앞면에만 자물쇠를 돋을새김 하였다. 앞면 문비의 좌우 각 면에는 서 있는 신장상이 배치하였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밑면에는 2단의 각진 받침이 조각되었고, 면마다 각진 서까래가 새겨져 있다. 8면의 합각마다 내림 마루인 우동을 새겼고, 그 사이는 기왓골을 표현하였다. 우동의 전각에는 작은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머리 장식인 상륜부에는 앙화, 보개, 보주가 놓여 있다.
이 승탑은 1962년에 해체, 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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