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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n번방이 보여준 남성연대, 우리가 부순다”

국회 앞에서 정치, 법조인들의 망언 피켓팅 시위 나서

  • 기사입력 2020.03.24 07:52
  • 기자명 김하늘 기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우리사회가 미투운동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이래 또 다시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벌어진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인 'n번방' 사건으로 코로나 19로 가뜩이나 위축된 사회 분위기를 뒤흔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름에 불을 지르듯 여기에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의 ‘n번방’ 사건에 대한 망언이 회자되면서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n번방’ 용의자와 가입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3일 현재 사상 최초로 400만명이 넘으며 억누를 수 없는 국민적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n번방'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표출되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지난 19일, ‘박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n번방' 사건의 20대 남성이 핵심 인물로 경찰에 구속됐고 그는 범행을 모두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n번방 사건은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이용한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단순히 단체 대화방에 불법 촬영물을 올린 것뿐만 아니라 운영자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n번방에 유료로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박사방'의 피해자만 74명에 이르고, 이 중 16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n번방을 통해 해당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을 보거나 유포한 사람은 최대 26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민사회 “세계 최대 아동성착취 사이트 ‘웰컴투코리아’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민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 인권, 법조계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 해결, 가해자들에 대한 일벌백계로 시작하라’ 제하의 공동논평을 통해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 해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하고, “세계 최대 다크웹 아동성착취 사이트 인 ‘웰컴투코리아’의 운영자도 그 범죄의 악랄함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지만 고작 징역 1년 6개월이라는 초라한 처분만 받았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버닝썬 사건은 남성문화가 곧 강간문화임을 증명했다”고 지적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 한 성적 착취를 방관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는 외침으로 마침내 세상은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는 더 이상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경찰은 박사뿐 아니라 텔레그램 성착취의 공모자와 공범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파헤쳐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울 것, ▲검찰과 법원은 텔레그램 성착취와 같은 악랄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박사방’ 운영자 박사를 비롯해 공범들을 모두 강력하게 처벌할 것, ▲정부는 텔레그램 성착취와 같은 여성폭력의 재발방지대책과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정책을 마련할 것, ▲국회는 졸속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에 머무르지 말고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고 남성들에게 “텔레그램 성착취방의 묵인, 방조도 공범”이라며 “성착취 카르텔의 공범이 되지 말고 변화의 주역이 돼라”고 촉구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정치권과 법조계 인사들의 망언 규탄

이어 23일에는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 긴급 간담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에서 피켓 시위에 나섰다.

이날 시위 참석자들은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한 고위 공무원 5인의 망언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 기존의 남성 질서를 허물고 새로운 상식을 정립하기 위해 남성 국회의원 5인의  망언 피켓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한 딥페이크 처벌법과 같은 주먹구구식 입법을 거부하고, 남성/가해자 중심 문화의 근절과 디지털 성폭력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촉구했다. 

피켓 시위 참석자들은 국회 법사위 제1소위 회의에서 성폭력 관련법 논의 중 딥페이크 등을 두고 “자기만족 때문에 혼자 즐기는 것도 처벌할 것이냐”(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 “나혼자 그림을 그린다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 없다”(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 “(청소년들이) 유명인들 갖다 놓고 혼자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작업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을 처벌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 그런 짓 자주한다”(김오수 법무부 차관),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몰이해와 망언들을 상기시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정치권 인사의 망언을 규탄하고 있다.   ©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지난 5일 딥페이크 처벌법(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졸속 처리 논란에 휘말렸다. 딥페이크 처벌법은 국민동의청원 1호 법안으로, 여성 연예인 혹은 지인 등의 얼굴과 음란물을 합성해 배포할 경우, 영리 목적이 인정되면 법적 처벌을 받는 법안이다.

하지만 청원인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들은 딥페이크 영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성폭력의 ‘일부’ 유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법사위에서도 “반포 목적이 아니어도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의가 제기됐지만 참석자 다수는 회의적이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운영자와 26만 이용자 뒤에는 가해자/남성 중심 문화에 기반한 사회, 왜곡된 성인지에 의한 주먹구구식 입법이 든든한 기반이 되어 가해자를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에 n번방 사건이 절대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피해자는 숨어야하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던 전례, 내 주변에 가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여성의 피해 사실을 별 것 아닌 일로 축소하고 오히려 탓하는 사회적 시선은 여성들에게 공포로 다가오고,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다”고 지적하고, “누구든 동의없이 영상을 배포/소비/유통 심지어 수익구조를 창출해내는 것은 모두 범죄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시위 참석자들은 나아가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원한다는 청와대 청원을 언급하며 “기존의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입법/사법/행정부는 성실히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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