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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국회 요구에 공소장 제공하는 행위는 헌법적 평가 있어야”

충분한 사전 논의없이 공소장 요지만 제출한 법무부의 미숙한 대처 지적

  • 기사입력 2020.02.14 08:57
  • 기자명 은동기 기자

법무부가 지난 4일 ‘울산시장 등 불구속기소 사건’과 관련,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에 공소사실의 요지만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법무부와 검찰 등 관련 부처를 비롯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도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회장 김호철. 이하 민변)은 12일 논평을 통해 법무부의 이 같은 결정에 ‘국회 공소장 제출의 제도적 측면’ ‘특정 사건에 대한 법무부의 판단’ ‘공소장 제출의 제도적 개선 문제와 기소된 사안 각각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검토하고 입장을 밝혔다.

검사의 공소장은 일방의 의견이 담긴 문서, 피고인 방어권 크게 침해될 수 있어

민변은 먼저 <국회 공소장 제출의 제도적 측면>에 대해 그간 국회가 국회법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회증언감정법’) 등을 근거로, 국회의원 단독으로 정부 부처 등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정부 부처는 이러한 요구에 응해 온 관행은 오랜 기간 이어져 왔으나, “국회법 등이 정한 절차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법 제128조와 국회증언감정법에서도 현재 이러한 목적과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와 달리 국회의원이 단독으로 국정감사?국정조사?안건의 심의 등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정부 부처에 자료 제공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거부하였다고 하여 곧바로 위 국회법이나 국회증언감정법을 위반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법무부가 국회의 요구에 따라 공소장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기본권과 국회의 국정통제권이라는 헌법기관의 권한이 충돌하는 것으로, 조화롭게 해석하여야 한다면서 ”헌법적 평가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민변은 특히 검사의 공소장은 형사절차에서 일방의 의견이 담긴 문서로,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한 법률적 평가 및 사실관계에 대한 피고인의 반박 등을 통해 재평가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공소장일본주의의 범위를 넘어서 증거능력이 확보되지 않은 증거에 따른 기소내용이 제한 없이 기정사실화될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이 크게 침해될 수 있으며 과거 많은 시국 공안 사건에서 이와 같은 인권침해의 전례가 있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재벌과 권력의 비리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일정한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국정통제와 공론화 차원에서 기소된 내용이 국회에 제공될 필요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개인정보 보호의 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이 때문에 독일과 미국 등 외국에서도 각자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관점과 기준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결국 검사가 작성한 공소장의 국회 제출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방어권과 프라이버시·개인정보보호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국회의 기능을 고려하여 정당성 여부가 논의되어야 할 것이며, 만약 정당하다면 그 시기와 범위, 절차 등에 대하여도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 과정을 통해 정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사건의 엄중함에 비춰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아

<특정 사건에 대한 법무부의 판단>과 관련, 민변은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 문제가 인권을 위한 제도개선의 관점보다 정치적인 논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면서 “여러 이유가 있지만, 법무부 역시 해당 사안의 엄중함에 비추어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먼저 절차적인 측면에서 법무부가 개혁의 필요성을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사회적 설득을 동의를 얻어 나가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사전 논의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형성되지 않고 법률과 법무부 훈령 사이의 충돌 문제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사건에 대한 공소장 제출 요구에 대해 공소 요지만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며 사후에 제도개선 차원의 결단임을 밝힌 것은 “특정 사안에 대한 정치적 대응”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고 법무부의 미숙한 대처를 지적했다.

민변은 다음으로 법무부가 공소장 제출을 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해당 공소제기가 된 사건이 가지는 ‘무거움’을 제대로 헤아렸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측면에서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나, 한편으로 여러 권력기관의 작동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언제나 국민에 의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며, 해당 사건은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가 피고인이 된 사안으로, 사안의 성격 역시 사적 생활 영역에 관한 것이 아니라 권력기관이 공적 영역인 선거에 관여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가 진행된 사안이었다“고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해당 사건 자체의 엄중함과 국민에 대한 깊은 책임감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다는 비판에 대해 정부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제출, 피고인 방어권·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관점에서 개선 필요

<공소장 제출의 제도적 개선 문제와 기소된 사안 각각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민변은 공소장 공개 범위는 지속적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으로 만약 현행 법령의 취지가, 국회가 요구할 경우 사건의 성격을 불문하고 즉시 그리고 일률적으로 요구받은 공소장 자체를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이러한 해석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관점에서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은 2월 11일 법무부 기자간담회에서 추미애 장관은 법무부가 공소장 공개의 기준을 재정비할 것이라며 “공개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중요사건의 경우, 공개재판 개시 이후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등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공소장 전문을 공개할 것이며, 국회에도 공개재판 개시 이후 공소장 전문을 제출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피고인의 방어권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국회의 대정부 견제의 권한과 알 권리의 조화 속에서 사회적 논의를 거쳐 그 기준이 확립될 수 있도록 우리 모임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변은 나아가 공소장 제출 방식의 제도적 문제와 기소된 사건 자체는 분리되어 논의될 필요가 있다면서 청와대와 정부 소속 공무원이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중대한 사안으로 기소된 시점에서 기소 내용만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마땅히 자제되어야 할 것이지만, 향후 재판 과정에서 진상이 규명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이 드러나면 책임 있는 사람에게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며, 해당 사건 공소장 자체의 공개가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와 별개로, 해당 사안에 대하여 정부는 국민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려야 하며, 특히 수사나 재판 등 과정에서 사안을 감추거나 진행에 관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민변은 어떠한 사안이든 보편타당한 원칙을 세워가는 것이 먼저여야 하며, 무엇보다 주권자의 입장에서 따져야 할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헌법 정신의 관점에서 좀 더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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