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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연설에 숨겨진 김정은의 고민 읽기

‘북한 신세대·북미 대화 재개·남한의 강경 대응’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

  • 기사입력 2022.08.06 17:46
  • 기자명 유판덕 객원칼럼니스트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7월 27일 이른바 “전승절” 기념 연설에서 “미국은 조미관계를 더 이상 되돌리기 힘든 한계점에로, 격돌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윤석열≪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라는 등 ‘말폭탄’을 쏟아 냈다. 이번 말폭탄의 특징은 대부분 동생 김여정이나 부하들을 내세웠던 것과 달리 “최고 존엄”인 김정은 자신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것일까?

이번 김정은의 연설도 늘 그러했듯 양면의 거울처럼 한쪽 면은 북한 내부를 비추고 다른 한쪽 면은 미국과 남한을 비추고 있다. 대부분 언론 논평들은 위에서 언급한 자극적인 폭언에 초점을 맞췄었다. 여기서는 이 ‘양면 거울’에 비추어진 김정은의 고민을 읽어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내면 거울에 비추어진 김정은의 고민은 북한 신세대, 즉 ‘북한 MZ세대’들의 이른바 ‘사상적 일탈’ 현상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이 고민은 이미 2021년 1월에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부터 털어 놓은 바 있다. 김정은은 당대회 결론 연설에서 당 및 정권기관을 동원해 “사회생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온갖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적 현상들을 강력하게 억제·관리할 것”임을 천명했었다. 그리고 그해 4월에 열린 제6차 당세포비서대회 결론 연설에서는 “지금 새세대들의 사상·정신 상태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청년 교양 문제는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 문제”라고 토로하며 “중요과업 중 첫 번째가 청년 교양에 특별한 힘을 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설들에 담긴 신세대는 장마당을 통해 ‘돈의 위력’을 경험했고, 한류 드라마를 접하면서 ‘마음속 자유를 느껴 본’ 세대로서 선대와는 달리 ‘유일적 영도를 무조건 관철한다’는 ‘수령체제 존속을 위한 척수(脊髓)’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는 세력화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승절” 연설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김정은은 그 처방으로 6.25 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노병의 충성심, 용감성, 애국심을 “1950년대 포화 속에 탄생한 위대하고 우수한 특질”이라고 추켜세우고, 새 세대들이 선대 노병(“역사의 체현자”)들 앞에서 이 “우수한 특질의 유전성(DNA)을 계승할 것”을 강요했다. 코로나 감염의 위험을 무릎 쓰고 금방 쓰러질 듯한 피골상접의 노병들을 평양으로 끌어모으고, ‘1950년대 정신’을 소환한 것을 보면 김정은의 다급한 심정이 읽힌다. 이러한 신세대들에 대한 고민은 김정은 자신의 건강 상태와 함께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갉아먹을 것이며, 그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 것이다.

두 번째는 문재인 정부 시절과 달리 급속한 한미동맹 복원과 강화된 공조에 대한 ‘두려움’의 고민인 것 같다. 먼저 미국 바이든 정부에 대한 인식이다. 가시적 치적에 급급해했던 트럼프와 달리 외교의 달인(미연방의회 외교위원장 역임)인 바이든의 외교원칙에 입각한 ‘북한 다루기’를 김정은이 제대로 인식한 것 같다. 험악한 말폭탄은 빠지지 않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단정적 화법이 아닌 진행형(“몰아가고 있다”)과 가정법(“엄중히 침해하려 든다면”)을 사용함으로써 향후 미국의 대응과 자신들의 재대응에 융통성과 여지를 남겨 둔 듯하다. 더하여 “이미 나는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여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되여 있어야 한다는 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며 미국과의 대화를 역설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다음은 ‘힘에 의한 안보’와 ‘강대강 대응’이라는 윤석열 정부 조치에 대한 ‘당황한 듯한 반응’이다. 그는 “윤석열이 집권 전과 집권 후에 내뱉은 망언들과 추태들을 정확히 기억한다.” “남조선군부깡패들이 내뱉는 망발들도 듣고 있으며 모든 군사적 행동들을 놓침 없이 살피고 있다.”면서 그 예들을 구체적으로 들었다. “《힘에 의한 평화》와 《힘에 의한 안보》” “《선제타격》 불사” “무기개발 및 방위산업 강화” “미국의 핵전략 장비 대대적 반입 및 여러 가지 명목의 전쟁 연습 확대” “《한국형3축체계》 핵심전력 강화” 등이 김정은의 언급 사례들이다.

김정은은 최근 우리 정부와 군이 보여준 일련의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핵보유국의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숙명적인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한 것” “남조선은 결단코 우리에 비한 군사적 열세를 숙명적인 것으로 감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절대로 만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애써 평가 절하했지만, 그 내면에는 적잖이 두려움이 깔린 듯하다. 

핵무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 비대칭 무기지만, 김정은 자신이 개발·완성한 핵무기(“전략적 잠재력”)를 김일성이 이뤘다는 “조국해방전쟁 승리”보다 “더 위대한 승리”라고 자신의 치적을 영원한 수령 할아버지 치적 위에 둔 것을 보면, 김정은이 현재 안고 있는 대내외적인 고민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지 짐작된다.

필자는 지난 5월 15일 “尹 대통령과 김정은의 주도권 싸움 시작, 그 대응 전략 방향”이란 칼럼을 쓴 바 있다. 이번 “전승절” 기념 김정은 연설내용을 뜯어보면 일단 윤 대통령이 이 주도권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듯하다. 따라서 재임 기간 치적 쌓기 욕심을 내려놓는다면, 또 북한의 도발과 압박이 강화되어도 ‘힘에 의한 안보’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주도권 싸움의 승기와 시간은 분명 윤석열 정부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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