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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 박물관

16회

  • 기사입력 2022.01.08 17:03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부대장
▲ 타클로반 시내에 있는 이멜다 박물관 전경   

필리핀하면 아름다운 태평양의 해변과 이국적인 풍경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간직한 관광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태평양에 연한 바다는 멀리서 보면 무척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면 화산재가 섞인 검은 색의 작은 모래들이 떠다니기 때문에 물이 혼탁해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불만족스러웠다.

작전지역내에 태평양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레이테 상륙작전을 기념해 조성한 ‘맥아더 상륙기념공원’외에는 특별한 문화유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립공원이긴 하지만 규모가 크지는 않으며, 태평양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참모들과 해안에 상륙했던 당시의 모습을 실물 2배 크기의 동상으로 세우고 주변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든 것이 전부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대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보여줄 게 없었다. 다행히 타클로반에 ‘이멜다 박물관’이 있어 방문객에게 주로 안내를 했다. 정식 명칭은 ‘산토니뇨 샤린(아기예수 성당)’이지만 우리는 그냥 이멜다 박물관이라고 불렀다. 박물관은 필리핀을 1965년부터 21년간 철권통치 했던 10대 대통령 마르코스가 건설한 29개의 저택 중 하나로 이멜다 여사가 타클로반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멜다 여사는 마닐라에서 태어났고 이곳 타클로반은 그녀의 부모 고향으로 이멜다 가문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지역이다.

국제적으로는 마르코스 대통령보다 이멜다 여사가 더 유명하다. 1986년 필리핀 시민혁명이 발생하여 마르코스 대통령이 하와이로 망명한 이후 대통령궁이 공개되었을 때 이멜다 여사의 사치와 부패상이 드러나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명품 구두만 3,000켤레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과 많이 비교되곤 하는데 정치여정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21년간 장기집권을 하면서 필리핀 경제를 오히려 후퇴시켜 필리핀에서는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가문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이 있다. 박물관은 1979년에 지어진 2,000㎡가 넘는 2층 저택으로 1층은 ‘산토 니뇨’ 성인을 기념하는 100석 규모의 성당과 필리핀 여러 섬들을 상징하는 테마를 가진 13개의 객실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마르코스 대통령과 이멜다 여사의 가족을 위한 7개의 침실과 30석 규모의 회의실, 연회장과 무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옌’ 태풍 때 1층 전체가 물에 잠겨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수많은 미술품, 도자기 등 지금도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당시의 화려한 영화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멜다 여사가 사용했다는 화장실은 사치스럽다고 할 만큼 다양한 도자기와 수집품들로 장식돼 있고, 그 크기 또한 우리의 웬만한 아파트 거실 크기에 가까웠다.

▲ 이멜다 초상화가 있는 홀                                                 한국의 나전칠기 가구가 있는 방  
▲ 2층 응접실                                                                         이멜다 침실 

이곳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객실이 많이 있는데 거의 방 전체를 나전칠기 공예품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는 이멜다 여사가 한국의 나전칠기를 좋아해 화려한 나전칠기 공예품을 많이 수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마르코스 대통령이 재임 당시 받거나 수집한 전 세계에서 온 여러 골동품이 전시되어 있고 1층 출구에는 기념품도 팔고 있다. 1986년 마르코스 대통령 퇴출 이후 건물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으며, 타클로반에서 유료(한화 1,500원 정도)로 관람해야 하는 유일한 관광 상품임에도 태풍으로 많이 훼손된 채로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부대를 방문한 손님들과 해군 장병들이 복귀하기 전 이멜다 박물관을 관람시켰다.

그러나 복잡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현지의 정보부대에서 가급적 한국군 장병과 손님들이 이멜다 박물관 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해 와 한 동안 방문을 자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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