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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월급 밀리고, 퇴직금 못주고…법정까지 간 자영업자들"

코로나에 자금사정 악화 체불 비일비재…소송 와중 폐업도

  • 기사입력 2021.11.28 17:47
  • 기자명 임채환 기자
▲ 폐업 상점 모습[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선고된 임금·퇴직금 체불사건 판결문에는 감염병 상황을 겪는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난다.

매출이 적고 자금 동원력도 부족한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닥치면 임차료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임금 관련 갈등을 겪기 쉬운 처지에 놓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법원도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하되, 코로나19 상황이 이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해 양형에 참작 사유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 시기 임금·퇴직금 체불 선고사건 40건은 개개의 사안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근로자가 퇴직하면 14일 이내에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무 위반, 최저임금에 미달한 급여 지급,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단순한 사례들이다.

피고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의 87.5%(35건)는 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이다. 5인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도 30%(12건)를 차지한다. 이런 자영업자들은 인사·노무관리 전담 인력도 없고,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는 외부 상황이 갑작스럽게 터지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충남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A씨는 코로나19 사태가 닥친 이후 10년 이상 근무한 종업원으로부터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종업원이 갑자기 사표를 내자 퇴직금과 잔여 임금 1천800여만원을 마련하기 어려워 제때 지급하지 못했고, 결국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계의 한 법무담당자는 "대기업은 단순 임금체불 사건 대신 통상임금과 관련된 퇴직금 문제 등 제도적이고 복잡한 차원의 소송이 있는 반면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은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 대응하기 어려워 임금이나 퇴직금 체불 소송을 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감염병 사태에 따른 경영난으로 소송을 당한 데 이어 폐업까지 이르기도 했다.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한 B씨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퇴직한 종업원에게 주휴수당과 퇴직금 5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아 민·형사소송을 당했다. 경영이 어려워 2개월간 휴업하기도 한 B씨는 종업원에게 합의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했고, 경영난이 계속돼 결국 식당 문을 닫고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 9월 발표한 자영업자 500명 대상 설문 결과에 따르면 39.4%가 '폐업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이들 중 94.6%가 경영 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세부적으로는 매출액 감소(45.0%), 고정비 부담(26.2%), 대출 상환 부담·자금 사정 악화(22.0%)가 사유였다.

김기홍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영업시간 제한으로 야간근무자를 갑자기 그만두게 해야 하는 등의 상황에서 직원이 고용노동청에 신고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며 "'을(乙)끼리의 싸움'이 되지 않고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임차료나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결문 40건에 등장하는 사업주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일부 피고인은 감염병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는 등 급여를 지급하지 못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고, 이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코로나19를 책임조각사유로 내세웠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임금 등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 책임을 전적으로 이들에게만 묻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법원 판결에도 반영됐다. 유죄를 선고하되, 코로나19에 따른 경영 악화와 매출 감소 등을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명시한 사례가 40건 중 35건(87.5%)이다.

'벌금형 집행유예' 비율이 높은 점도 눈에 띈다.

과거에는 금고나 징역형에 대해서만 집행유예가 가능했으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2018년 1월부터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도 집행유예가 도입됐다. 분석 대상 사건 40건도 벌금 500만원을 초과한 사례가 없고, 9건은 100만원 미만 소액이 선고되는 등 모두 집행유예 검토 대상에는 포함된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하는 사법연감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위반사건에서 벌금형 집행유예 판결 비율은 1심 기준으로 2019년 5천66건 중 104건(2.05%), 2020년 4천824건 중 127건(2.63%)이었다. 반면 연합뉴스가 살펴본 판결문 40건 중 벌금형 집행유예는 32.5%(13건)이었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감염병 사태가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임을 법원도 인정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물론 피해 금액과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지난 1월 근로자 2명의 임금 1천100여만원을 체불한 혐의로 기소된 식당 업주에게 벌금 200만원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코로나19 감염증으로 매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고 판시했다. 피고인이 식당을 폐업한 사실도 언급했다.

아울러 피고인이 잘못을 인정하는 점, 근로자들에게 숙소를 보증금 없이 임대하고는 이들이 퇴직한 이후에도 퇴거시키지 않고 임차료도 받지 않는 태도 등도 유리한 사정으로 봤다.

서울 서초동의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이익을 봤는데도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징역형 실형도 가능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외부 상황으로 사업이 안 돼 불가피하게 급여를 못 준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법 위반으로 처벌은 해야 하지만, 방역조치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피해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벌금형을 선고하면서도 집행을 유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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