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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

  • 기사입력 2021.10.24 09:39
  • 최종수정 2024.02.03 15:29
  • 기자명 김희재 작가
▲ 김희재(수필가, 한국어 교육 전문가)     
▲ 김희재(수필가, 한국어 교육 전문가)     

 

친구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아흔두 살 되신 어머니는 그동안 바깥 거동을 전혀 못 하셨다. 2년 넘게 병원에 누워만 계셨다. 효성이 지극한 친구는 어머니를 아예 자기 집 가까운 병원으로 모셔왔다. 매일 찾아뵙고 수발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바쁜 일상 속에다 어머니까지 끼워 넣으려니 힘들고 벅찼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친구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올해 서른아홉 살이다. 재작년에 결혼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만사를 제치고 딸의 난임 치료를 도왔다.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간신히 임신이 되었다. 초음파 사진 속에 콩알 두 개가 선명했다. 소원대로 쌍둥이가 생긴 것이다. 산모의 나이가 많으니까 한 번에 둘을 낳고 싶었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와 함께 주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축하했다. 어느덧 임신 12주에 접어들었다.

배가 아프고 피도 비친다는 연락을 받고, 친구는 단걸음에 딸네 집으로 달려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딸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찾았다. 황급히 뛰어 들어가 보니 변기에 시뻘건 핏덩어리가 쏟아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맨손으로 그 핏덩이를 건져 손가락으로 살살 더듬어 헤집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우는 딸을 부축하여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마치 발이 허공을 딛는 것처럼 허둥거렸다. 부랴부랴 초음파검사를 했다. 다행히 태아의 심장소리가 쿵쾅쿵쾅 우렁차게 들렸다. 지금은 아가들이 뱃속에서 무사하지만, 앞으로 꼼짝도 하지 말고 가만히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딸이 아기를 낳을 때까지 자기 집에서 돌봐주기로 작정했다.

딸을 데리고 내려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곧 운명하실 것 같으니 어서 오라는 다급한 전갈이었다. 어렵사리 잉태한 생명을 지키는 일과 기한이 다 된 생명을 보내드리는 일이 공교롭게도 딱 겹쳤다. 임산부를 집에다 내려놓고, 친구는 단숨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식이 없는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작별인사를 했다. 사랑한다고, 편히 가시라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울면서 속삭였다. 이렇게 복잡한 순간에 훌쩍 떠나주시는 것이 고맙기도 했다. 어머니께는 정말 죄스럽고 미안하지만, 친구에겐 출산할 때까지 가만히 누워서 지내야 하는 딸과 손주들을 지켜내는 것이 더 급선무(急先務)였다.

장례를 모시는 중에도 그녀는 딸을 내려놓지 못했다. 상주 노릇 하면서도 짬짬이 집에 가서 시중을 들어주고 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그녀는 반쪽이 되었다.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친구를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 어느 대학 연구 자료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관심과 사랑을 100으로 볼 때 자식이 부모에게 보내는 마음은 0.7에 불과하다고 한다. 처음엔 내리사랑과 치사랑이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난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랑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

애초부터 부모에게 진 사랑의 빚은 자식에게 갚도록 지으셨나 보다. 그것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섭리였을 것이다. 자식 사랑은 본능적으로 하는 것이고, 효도는 깨우치고 노력해야만 할 수 있는 덕목이었다. 그래서 유교에서 그렇게 효를 강조하였고, 십계명에도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장수(長壽)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한 모양이다. 내 나이 환갑이 지나고 자식들도 모두 독립하고 나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부쩍 더 난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알 것 같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0.7이 아니라 70 정도까지도 돌려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는 내게로 다시 오실 수가 없고, 내가 그리로 가야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을 읊조리는 내 입이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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