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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우(태양)의 후예(8회) 복잡한 문제는 공평무사(公平無私)로 정면 돌파

  • 기사입력 2021.09.25 09:01
  • 기자명 이철원
▲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는 아라우 부대장 이철원 대령 동

직접 및 간접 접근방법 혼용

 우리가 최초로 복구한 오퐁초등학교 완공식에서 학교장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군이 만약 어느 초등학교를 복구할 것인지 시장이나 교육감의 의견을 물었으면 우리학교는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학교는 마르코스 대통령(제10대, 1965~1986)시 설립된 이후 한 번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재해복구 소요와 우선순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장과 행정기관에게 의견을 물으면 자기 이익과 관련된 사람이나 장소를 추천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외부로부터 구호품이 많이 지원되었지만 자치단체장에게 밉보이거나 선거 시에 다른 후보를 지원했던 일부 마을은 구호품을 아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따라서 재해복구작전시 지방자치단체장을 통한 간접적 접근보다는 이들과의 의견 충돌을 최소화하며 우리가 직접 정찰 후에 판단하는‘ 직접 접근방법’을 우선했다. 그래야만 피해를 받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피해 주민들이 필리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에서 우리가 높은 사람들의 의견만 듣고 지원한다면 주민들에게 이렇게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지자체장과 협의를 통하여 결정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들로부터는 의견만 수렴하였으며 우리가 주도적으로 판단을 하고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필리핀군에게 타당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했다. 

한번은 기독교 단체인 월드 디아코니아로부터 컴퓨터 100대를 후원받아 우리가 복구한 학교에 직접 나누어 주었는데 그 후로 레이테주 교육감이 비협조적이었다. 그렇다고 교육감에게 100대를 다 주고 분배하라고 했으면 우리가 원하는 초등학교까지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면 돌파로 현지 주민 요구수준과 우리의 지원능력 차이 극복

 현지 도착 다음 날인 2013년 12월 29일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재난대책본부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필리핀 군, 필리핀 재난대책본부, UN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주지사, 시장, 관련 기관, 매스컴 앞에서 기자회견 혹은 청문회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최초 협조회의를 실시했다.

회의 목적은 현지에 도착한 한국군에 대한 공식적인 소개와 재해복구 우선순위를 논의하는 것으로 제일 큰 관심은 재해복구에 긴요한 우리 중장비 규모와 지원 가능 여부였다. 주민들은 한국군 부대가 마치 슈퍼맨처럼 태풍피해를 다 복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필리핀군과 UN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도 이러한 높은 기대수준과 우리의 능력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군에 대한 참석자들의 과도한 요구가 빗발치자 필리핀군 재해복구팀의 본독 대령은 "한국군이 완전재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공공시설에 대한 보수, 잔해물 제거, 도로정비 등을 할 것이며, 한국군의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다."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이에 나는 간략히 부대 임무와 장비 현황을 소개한 후 우리의 능력을 정확히 제시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한국군 재해복구지원 개념을 발표했다.

I. 한국군 작전지역은 레이테주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지역 중 타클로반을 제외한 팔로, 타나완, 톨로사 지역으로 한다.

2. 한국군 공병대는 중장비팀과 건물복구팀으로 운용하며 중장비는 3개 도시의 시장들이 주도적으로 운용하도록 제공한다.

3. 건물복구팀은 3개 도시의 초등학교 복구에 집중하여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용되도록 지원한다.

4. 의료팀은 캠프에 병원을 운용하고 격오지 마을 위주로 순회 의료지원을 하며 방역은 타클로반을 포함한 전 지역에 지원한다.

5. 구호물자는 각 시장들과 협조하여 난민촌과 초등학교 위주로 분배한다.

 이와 같은 발표에 주지사와 UN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 책임자는 학교도 중요하지만 외부 의료지원팀이 떠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들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므로 병원을 우선적으로 복구해 줄 것을 요청했다.

▲ 상륙함에 주요 인사(주지사.시장.UN직원) 초청 행사   

 한편 타클로반 시장은“왜 한국군이 타클로반은 지원하지 않느냐?" 하며 타클로반이 한국군의 중점 작전지역에서 제외된 것에 대하여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 이에 나는 “타클로반은 태풍의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지만 외부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지원이 되지 않고 있는 타클로반 남쪽의 3개 시를 한국군이 지원하는 것으로 필리핀 정부와 한국정부가 합의 하였다”는 것을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피해복구와 관련해 많은 국제기구와 단체, 지방정부,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국군이 3개 지역에서 공평하게 활동하고 시장에게 중장비 운용권을 준다고 하자 모두 수긍하고 반기는 분위기였다. 회의를 마치고 오면서“현지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지혜로운 처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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