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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길

  • 기사입력 2021.08.30 17:46
  • 기자명 이영탁

   

돈이란 무엇인가?

  하나 마나 한 소리인 줄 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불편하고 무질서할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이와같이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돈이요, 화폐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야속하기도 하다. 돈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돈을 위해 온갖 고생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돈 때문에 명예나 자존심 다 버리고 비굴해지는 사람, 돈 때문에 의리 대신 배신과 악행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등등.

   그렇다고 돈이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돈처럼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게 또 있을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돈을 벌어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잘 살게 하기 위한 것. 나아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착한 마음에서 나온 것. 이러한 돈의 양면성을 생각하면 끝이 없다.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화폐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지이다. 세상만사 다 변하는데 돈이라고 변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돈이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돈의 환경 내지 여건과 관련하여 우선 제로 또는 마이너스 금리를 들 수 있다. 우리는 10여 년 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를 지켜보았다. 양적완화를 통해 금리가 아무리 낮아져도 소비와 투자는 늘어나지 않고 저성장 고실업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전 세계가 더 많은 돈을 풀고 있다. 금리가 아무리 내려도 투자할 데는 마땅치 않고, 그러다 보니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금이나 달러가 안전자산 역할을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미국경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지라 돈이 암호화폐로 갔으면 갔지 달러는 인기가 전 같지 않다. 그러잖아도 세계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모습이다.

   또 현금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카드의 사용과 모바일 결재의 확대에 따라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아무 불편이 없는 세상이다. 실제로 요즘 지갑에 현금이 없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현금을 쓰기보다는 카드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로금리와 현금없는 사회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낮은 금리와 경제난은 은행의 수지를 악화시키고 경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불안한 나머지 돈을 빼낼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뱅크 런(bank run)이 올 수 있고 결국 은행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현금없는 사회 만들기다. 하다못해 고액권이라도 발행과 사용이 중단되어 있으면 뱅크 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아닌가.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온 세상의 디지털화이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변하는데 금융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이제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으로 은행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증권회사에 가지 않고도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 팔 수 있다. 이처럼 인터넷과 각종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금융의 이용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아나로그의 영역은 갈수록 작아지는 대신 디지털의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사람까지도 아나로그 세대는 구식이요, 그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판에 금융은 물론이고 화폐까지도 그 형태나 사용방법이 디지털로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금융기관의 미래

  몇 년 전 우리가 읽었던 거대권력의 종말(The End of Big, 니코멜레 저)을 보면 디지털 시대에 다윗은 어떻게 골리앗을 이기고 새로운 권력이 되는가를 잘 정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정부/기업/언론/교육 등 기존의 거대권력은 전부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거대권력을 논할 때 금융기관을 빼놓을 수 없다. 거대기업 중 거대 기업인 금융기관이야말로 오랫동안 엄청난 권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여기에도 디지털 바람이 불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금융의 환경이 바뀌면서 기존 금융기관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기득권이 많을수록 사람이든 조직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고 미래의 금융을 핀테크(fintech)가 아니라 테크핀(techfin)이라고 하면서 IT 관련 기업들이 금융을 더 잘할 거라고 하겠는가. 지금 페이스북이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걸 봐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카카오나 네이버가 각종 금융 분야에 진출하는 걸 볼 때 심상치가 않다.

   블록체인의 등장이 금융의 기존 방식을 마구 흔들고 있다. 블록체인은 당사자 간의 직접 거래 즉 p2p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금융기관처럼 중간에서 수수료를 취하는 영업 방식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제로 금리와 현금없는 사회에 이어 금융의 디지털화에 따른 IT기업의 금융업 진출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기존 금융기관의 존립 기반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잘 나가던 금융기관을 두고 이제 사양산업이 되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CBDC의 출현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고 있고 현금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디지털 화폐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9년에 CBDC 발행을 선언한 이후 내년 초 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추어 공식 사용을 준비 중이다. 미국도 한동안 페이스북이 준비한 디지털 화폐 리브라를 견제하는데 몰두하다가 중국이 계속 밀어붙이니까 뒤늦게 연준이 나서고 있는 모습. 우리 한국은행도 디지털 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는 디지털 사회의 실상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디지털은 좋든 싫든 우리가 맞이할 미래요, 그것 때문에 우리 생활은 계속 편리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상황. 왜냐하면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프라이버시라는 소중한 권리를 포기한 채 디지털 빅 브러더의 감시망에 갇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앞선 안면인식기술을 두고 중국 정부가 이를 시민의 편의성 증진과 범죄자 색출의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으로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사실 현금 대신 카드나 모바일 화폐를 사용하면서 이미 우리는 우리의 사생활을 여지없이 정부 등 감시망에 노출시켜 온 셈이다. 

  CBDC가 등장할 경우 시중은행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중앙은행이 국민들을 직접 상대할 경우 시중은행은 소외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시중은행과 일반 국민과의 사이가 멀어지고 결국 은행업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은행의 대출여력 감소, 수지 악화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하면 CBDC에 대해 기존 금융기관이 반대하는 것은 물론 정부나 중앙은행도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CBDC와 암호화폐*의 관계

   * 가상자산(vertual asset)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을 어떻게 하느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님

  여기서 암호화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암호화폐를 단순히 투기 대상으로 보고 곧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암호화폐가 언제 왜 생겼는지를 살펴보자. 암호화폐의 리더인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에 대한 불신에서 탄생하였다. 비트코인이 출시된 2009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라는 점이다. 기존의 금융은 중앙화되어 있는 바 주체인 정부나 중앙은행의 미숙한 경제 운영으로 공식 화폐에 대한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국 금융위기가 오고 말았다. 이때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소위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마구 풀었다. 우선 급한 불은 대충 껐다고 해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 시중에 풀린 많은 돈은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몰려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달러를 비롯한 각국 화폐에 대한 신뢰는 계속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블록체인을 타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블록체인 거래는 중앙의 개입 없이 거래 당사자 간에 직거래하는 방식이다(p2p거래). 중간 관리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전혀 모르는 당사자 간의 거래도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신뢰의 기계가 바로 블록체인이다. 

  앞으로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가 나올 경우 암호화폐는 어떻게 될까? 디지털 화폐가 나오면 정부가 민간의 경제활동을 들여다봄으로써 big brother가 될 텐데? 중앙은행이 시민들과 직거래할 경우 나타나는 시중은행의 경영난은 어떻게? 어차피 달러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공식 화폐의 가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디지털 화폐가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원래 정부와 민간이 대치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민간이 이기게 되어있다. 이렇게 보면 공식 화폐가 가져올 여러 문제가 앞으로 암호화폐 시장의 존립 기반을 다져주고 있는 셈이다. 

 맺는 말

   각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암호화폐의 영역이 계속 커질 경우 공식 화폐의 입지를 약화시키면서 그 자리를 넘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국의 공식 화폐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 가치가 떨어지는 동안 암호화폐에 대한 인기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당국의 입장에서 이러다가 자리 뒤바뀜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길 수 있는 건 이해가 간다.

 원래 정부는 시장을 이길 힘이 없는 데다가 갈수록 그 힘조차도 약해지고 있다. 강남 아파트 값 잡으려고 온갖 짓을 다 해도 효과를 보기는커녕 전국 집값을 죄다 올려놓은 걸 보라. 이런 현상은 비단 아파트 뿐 아니라 시장경제를 이기겠다고 달려드는 모든 정책은 예외 없이 그렇게 되고 만다.

 그렇다고 암호화폐(비트코인)가 공식 정부화폐 자리까지야 꿰어차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정부가 온갖 구박을 하는데도 기죽지 않고 버텨내는 암호화폐의 자생력을 보라!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계속 커지고 있고 그러다 보면 그들의 역할과 비중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왜냐고? 미래 세상은 디지털 세상이요, 메타버스(metaverse, 가상세계)의 영역이 계속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탈중앙화를 내용으로 하는 디파이(DFi, decentralized finance)가 금융의 큰 획이 될 것이다.

  거기에다 이런 변화에 정부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여러분들은 달러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고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나라마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낮아지고 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래 저래 미래 세상은 정부의 공식 화폐 대신 암호화폐의 입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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