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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함께 산 하루

  • 기사입력 2021.08.23 09:09
  • 기자명 이희영
▲ 방산 이희영  

지난주 친구 셋이 만났다. 다들 당구를 좋아하는 터라 오랜만에 당구를 치고 오후 5시에 끝냈다. 코로나 4단계 거리두기 제한으로 저녁 6시 이후에는 두 명만 함께 앉아 식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 끝낸 것이다. 친구가 셋이다 보니 서둘러 가서 6시까지 식사를 마치기 위해서이다. 

 날이 하도 무더워 숨쉬기조차 힘든데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더운 음식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시원한 얼음이 둥둥 뜬 메밀소바를 먹으러 갔다. 입구에서부터 무슨 죄지은 사람 같다. 열 체크한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카메라 화면에 얼굴을 비추니 삐 소리가 나며 36.8도가 나왔다. 평소에는 36.4도 정도로 낮게 나오는데 당구 치면서 열이 올랐는지 0.4도가 높게 나왔다. 일단 통과했다. 

 다음은 나의 이름과 주소 등을 적어야 했다. 휴대폰을 꺼내 QR코드를 찾아 찍으려 했다. 아이고, 더워 죽겠는데 QR코드 기간이 지났다고 다시 인증하란다. 열이 0.1도가 더 올랐다. 인증하기 위해서 다시 인증번호를 받아 찍고 확인한 후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작년 1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된 폐렴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전염되었다. 처음엔 우한폐렴이라 일컬어졌는데 특정 지명으로 명명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코로나19로 정식 명칭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지금까지 1년 8개월 동안 사회활동이 단절되어 집안에서 집콕 신세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으니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 됐다. 

 프랑스에서는 수만 명의 군중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행진하며 거리두기를 제한하는 방침에 대해서 “마크롱은 물러가라!”라며 외치고, 백신 접종에 대해서도 개인의 자유의사를 막는다고 분노하고 있다. 미국 역시 백신을 맞으라는 정부와 시민들과의 갈등이 내전 수준이다. 백신이 남아돌아 폐기처분하기도 하고 남의 나라에 준다는데 우리는 백신이 모자라서 난리다. 

 영국은 코로나를 위험한 질병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독감보다도 약한 감기 정도로 보는 것이다. 걸리더라도 사망률이 낮고, 회복되면 오히려 몸 안에 항체가 생겨 자동면역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모든 방역 규제를 철폐했고, 영국 국민은 마스크를 벗고 우리의 호프 토트넘의 손흥민이 시원하게 골을 넣는 순간에 마스크도 쓰지 않고 환호하며 축제를 즐기는 자유스러운 일상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말 잘 듣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참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6시 전에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대낮같이 밝았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아이스크림 집을 찾았다. 한 사람은 따로 앉기로 하고 들어갔다. 식당과 마찬가지로 열도 재고 QR코드도 찍었다. 막 의자에 앉으려는데 여직원이 따지듯 물었다. “세 분이 일행이시죠? 일행이시면 안 됩니다!” 나는 한 사람은 따로 앉을 거라고 말했다. 여직원은 “그래도 안 됩니다. 걸리면 벌금 뭅니다”기가 막혔다. 모르는 사람이면 옆자리에 앉아도 되고 아는 사람이면 안 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경우인가! 하는 수 없이 쫓겨 나와 씁쓸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우리나라 코로나는 참 기이하기도 하다. 낮에는 가만있다가 6시 이후부터 활동하나? 전철을 타면 사람이 꽉 차 있는데 거긴 피해서 가나? 둘이 있으면 옮기지 않고 셋이 있으면 옮기나? 친구가 옆에 있으면 옮기고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안 옮기나?

 이런저런 생각 하며 집에 들어서니 딸 내외가 와있었다. 나를 보며 딸이 물었다. “아빠, 백신 맞았어?”“응 맞았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딸아이는 “내가 절대 맞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맞았어?”핀잔을 준다. 사실 나는 백신을 맞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주관하는 중요한 모임이 있는데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나는 정부에서 백신을 맞는 사람은 모임도 가능하고 여행도 자유롭게 해준다는 말을 믿고 백신을 맞았다. 뻥이었다.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오히려 코로나가 다시 급증하자 짧고 굵게 방역한다며 거리두기 4단계로 격상해서 시행에 들어갔다. 

 딸아이의 주장은 백신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월남전에서 고엽제로 인해 그 증상이 십수 년 후에 나타나고, 방사능 오염자가 한참 후에 나타나듯이 백신 역시 그 부작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는 생리적 부작용으로 임신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염려스러운 말에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서양 국가들처럼 독감 정도로 생각하고 개인의 판단하에 방역도 하고 자유스러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스크림도 못 먹고 쫓겨나고 딸아이한테도 한마디 들으니 코로나와 함께 한 하루는 참으로 괴로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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