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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치망설존(齒亡舌存) 리더십 단상(47회)

  • 기사입력 2021.08.22 16:22
  • 기자명 김승동
▲ 김승동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公共)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한니발(Hannibal)이 카르타고(Carthago)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consul 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이나 됐다고 한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으나 제정(帝政)이후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Eton College)’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Andrew)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James Award Van Fleet)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Mao Zedong)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 가운데 5,099 명이 사망했으나 그 가운데 장, 차관이나 권력층 자녀는 단 한명도 없었다. 

특히 2014년에 모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이 보도한 바에 의하면 국내 7대 재벌가(家)의 2·3세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 면제를 받은 비율이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삼성계열이 대상자 11명 가운데 8명이 면제를 받아 73%로 가장 높았고, 다음이 SK그룹(57%), 한진그룹(50%), 롯데(38%), 현대(28%) GS(25%)순이다.

또 역대 최악의 국회라고 평가받고 있는 현재의 제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여성 의원을 제외한 252명의 병역이행 현황을 확인한 결과 53명이 병역을 면제받아 군 복무를 안 한 것으로 병무청이 밝힌바 있다.

이와 같이 이른바 사회 지도층과 자제들의 병역 면제 비리가 계속 논란인 가운데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어 남다른 눈길을 끌었다. 

웬만한 집안 배경만 있어도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최민정 씨는 남자 훈련생도 탈락할 만큼 혹독하다는 특전단 훈련도 견뎌내고 당당히 해군 소위로 임관된 후 2015년 초 충무공 이순신 함에 탑승해 해적과 무장 세력들이 들끓는 아라비아 해(Arabian Sea)의 아덴만(Aden bay)해상에 파병됐다가 지난해 12월 중위로 진급한 후 서해 최전방 북방한계선(NLL)을 방어하는 해군 2함대사령부 예하 전투전대 본부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당시 ‘땅콩’회황 사건 등 이른바 ‘금수저’로 이야기 되고 있는 재벌가 자녀들이 잇따른 구설수로 사회적인 눈총과 비난을 받고 있는 시점에 최민정 중위의 군복과 계급장이 유난히 돋보이고 그의 처신이 자랑스러운 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 같다.

로마 천년을 지탱해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しおのななみ)’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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