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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제약사를 둘러싼 시사점 (2): 국내 도입의 찬반 논의를 중심으로

  • 기사입력 2021.08.17 10:16
  • 기자명 UAEM Korea

“공공제약사란 민영제약사와 대치되는 개념으로, 의약품 생산 및 공급을 정부가 직접 관리한다. 공공제약사가 도입된다면 우선적으로 의약품 생산의 자급력이 확보되기 때문에 필수의약품, 백신 등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의의를 가진다. 또한, 희귀 의약품의 경우 환자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가격으로 공급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국가의 개입을 통해 이러한 한계점을 해소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공공제약사 관련 논의는 ‘공공제약사’라는 개념이 소개된 이후로 쭉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공공제약사 개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4년 제약사 ‘로슈’가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의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이후였다. 로슈의 결정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진보신당연대회의, 인권운동사랑방등의 시민단체와 환자들이 정부에게 공공제약사를 설립하여 희귀 및 필수의약품을 생산할 것을 요구했다.

▲ 이미지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5EKK5SR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필수의약품에 대한 공공 공급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발표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필수의약품관리위원회’를 신설하였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것도 같은 시기이다. 

2015년 5월에 국내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메르스, 2016년 1월 세계보건기구 (WHO)가 국제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한 지카 바이러스, WHO의 'Global Tuberculosis Report 2018’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발생률 1위를 차지한 결핵 등의 전염병에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코로나19사태로 인하여 공공제약사 관련 논의가 재점화되었다. 유행병의 백신은 지속적인 수익을 담보하지 않아 민간 제약사들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공공기관이 해당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제약사의 설립을 추진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커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이 칼럼에서는 국내 공공제약사 관련 찬반 논의와 대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전반적으로 공공제약사 도입에 대해 국회와 시민 단체는 찬성을, 보건복지부 및 제약업계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찬성하는 입장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공공제약사 도입을 통해 희귀 필수 의약품, 퇴장방지 의약품 등 민간에서 수익성을 이유로 생산을 꺼려하는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제약사를 설립하여 운영한다면 필수 의약품의 유통 및 관리가 보다 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 업계 및 시장은 기회 비용 등의 시장 논리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한다면 의약품 접근성에 더 크게 기여할 것이다. 

두 번째로, 지난 감염병 사례들을 보면 국가 주도의 의약품 생산이 공중 보건 위기 대응에 효과적이었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 신종 감염병의 백신은 비용 문제로 인해 민간 제약사가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 비용이 크며, 감염병이 사그라들면 장기적인 이익을 취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의약품 공급 뿐만 아니라 생산에 개입한다면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이 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공성을 추구하는 독자적인 R&D (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개발) 추진이 가능해진다. 특히 희귀 난치성 환자들을 위한 희귀 의약품 연구와 공급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소수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국내 공급 및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희귀의약품 시장의 경우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사업 범위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공공제약사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앞서 언급한 필수 의약품과 상통하는 맥락에서,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은 보편적 권리이기 때문에 공공제약사 설립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공공제약사 설립은 국가 주도로 시간과 비용의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며, 백신 및 희귀 의약품 등 필수 의약품을 이해타산 없이 연구, 생산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제약사 설립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첫 번째로, 민간 제약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채산성이 맞지 않아 수급이 어려운 희귀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공공제약사 설립의 하나의 목적이다. 비록 국내에서 다국적 제약사에서 개발한 희귀의약품의 점유율이 높지만, 첨단재생의료·바이오의약품법이 통과된 이후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희귀의약품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제약기업에서 희귀의약품 전문 연구개발 기업으로 전향하거나(SK바이오팜), 기술 도입이나 공동 투자 등의 형태로 벤처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희귀의약품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유한양행) 등 다양한 유형의 기업들이 희귀의약품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제약사가 설립된다면, 공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공공제약사가 희귀의약품 시장을 독점할 위험이 있다.

두 번째로, 현행 국가필수의약품 관리체계와 중복된다. 약사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공급 종합대책을 수립한다.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채산성이 부족하여 생산 및 공급의 중단 우려가 있는 의약품의 원가를 보전해주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또한, 식약처는 이미 공공제약사의 지휘소 역할을 협의회를 통해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미 희귀필수의약품 접근성을 증진하기 위한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가 존재하여 공공제약사의 기능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는 최근 5년간 약 8만여 건의 응급 약, 항암제 등을 공급했다. 현재는 100여 종의 의약품을 보유하며, 2019년 3월부터 뇌전증 치료제 등 대마 성분 의약품을 수입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희귀 난치병 환자에게 공급해왔다. 또한, 결핵 등 채산성 문제로 제조하지 않는 의약품을 국내 제약사에 위탁 제조하여 환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공공제약사 외 기타 방안으로 현존하는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의 기능을 확대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가령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필수의약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현실적 대안으로 공공수입도매상을 제시했다. 기존 다국적제약사와 함께 병행수입을 통해 제품을 공급한다면 공급거부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행수입이란 같은 상표의 상품을 여러 수입업자가 수입하여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제도이다. 원칙적으로 상표의 고유 기능인 출처표시와 품질보증 기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병행수입이 허용된다. 다만 병행수입이 가능하려면 관련 법규나 고시가 개정돼야 하고, 병행 수입되는 제품의 가격이 기존의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동일해야 한다. 현재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가 관련 권한을 가지므로, 이를 확대해 통합 운영한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자면, 아직 한국의 공공제약사 도입은 고려할 점이 많다. 먼저, 공공제약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자체적인 생산 시설을 우선할 것인지, 타 기관과 협력하여 연구를 진행하여 의약품을 저렴하게 수급할 것인지, 희귀의약품이나 필수의약품에 집중할 것인지 등의 구체적인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한다. 기존의 제약회사나 대학내 연구기관의 역할을 조사하여 중복되는 영역을 줄이고, 설립 목적과 현황에 맞춰 재편성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희귀ㆍ필수의약품센터의 확대 운영을 하나의 보완책으로 볼 수도 있다.  먼저 희귀의약품센터 취급 품목을 희귀의약품 또는 국내 미허가 미유통 의약품을 아우르는 필수의약품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현재는 110여종의 긴급도입 의약품과 마약류 의약품 등만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희귀의약품 포함 필수의약품의 생산, 유통, 소비과정에 적극적 개입해 안정적 공급을 위한 선제적 관리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이 있다.

공공제약사는 의약품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적 사업이지만, 수익성을 추구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투병하는 환우들을 위해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희귀 필수 의약품을 공급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글쓴이: 김가은 (연세대학교 과학기술정책학과). 김승아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이광혁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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