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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화 문

  • 기사입력 2021.08.01 21:10
  • 기자명 방산 이희영
▲ 수필가  이희영   

 언젠가 딸아이와 함께 경복궁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광화문 앞에서 딸아이가 물었다.“아빠! 광화문이 무슨 뜻이야?”순간 머리가‘띵’했다.‘아니~ 대학원을 나오고 석사까지 받은 아이가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기야 학교에서 한자(漢字)를 배운 적이 없으니 그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으랴.

  오래전 KBS에서 방영했던 사극‘정도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정도전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를 도와 경복궁을 창건하고 남쪽에 큰 문을 세우면서‘사정문(四正門)’이라 명명했다.‘네 가지 바른 일’이란 뜻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또는‘사방에서 어진 이가 오가는 정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이름만 보아도 정도전의 올곧은 국정철학을 엿볼 수가 있다. 

  후에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통하여‘광화문(光化門)’이라 개명(改名)했다. ‘왕의 큰 덕이 온 나라에 비추어진다.’는 뜻으로 어느 정도 한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금세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광화문은 그런 역사와 의미를 지닌 나라의 얼굴이며 상징하는 문화재이다. 

 수년 전 광화문을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현판 글씨를 ‘한글로 할 것이냐 한자로 할 것이냐’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결국 당시의 한자 현판대로 광화문은‘光化門’으로 결정했다. 그전까지는‘광화문’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때까지 한글로 잘 쓰여 있던 현판을 왜 뜯어내고 학교에서도 가르치지도 않는 한자어로 다시 쓰려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의 물음을 접하면서, 광화문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봤다. 600여 년 전, 정도전이 생각한‘사정문(四正門)’뜻이 그대로 전해졌는가? 세종대왕이 지어 붙인 ‘光化門’의 그 뜻과 정신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는가? 금의를 두른 세종대왕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조선조에도‘임금의 덕이 온 나라에 비친다’했는데 지금도 그런가? 광화문 뒤 임금이 살았던 곳에는 총을 든 경비병들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쏘아보고 있다. 근처를 지나노라면 냉기가 느껴져 가까이하기엔 너무 으스스하다. 온 나라를 비춘다는 빛의 온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광화문이 무슨 죄가 그리 크다고 광화문 현판을 뜯었다 붙였다 하고, 광화문 광장은 무슨 허물이 커 허구한 날 파헤쳐져야 하는가? 온 백성이 모여들어 임금의 덕을 느끼며 즐기는 축제의 마당이 되어야 하는데, 천막만 들어서 있고 사방으로 출입 금지 테이프 줄만 둘러쳐 있으니 맘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임금의 은덕은 어디 가고. 사방에서 어진 이가 오간다는 광화문 거리엔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선글라스(sunglass)를 낀 사복경찰들이 오가는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

 옛 조선의 왕들은 왕이 되기 전에 세자(世子)로 책봉이 되었다. 그 시기에 왕이 되어서 갖추고 행해야 할 품성과 자질 그리고 통치술을 엄하게 지도받으며 공부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요즘은 대통령이 선거에 의해 국민의 표 숫자로 뽑히게 되니 오직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할 생각에만 열중한다.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자질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고, 오히려 상대방 헐뜯기에 바쁘고 제 잘못에 대해선 아무런 가책도 없이 보인다. 

 조선의 왕들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광화문에 제단을 만들어 비를 내려달라 하늘에 빌었다.‘짐이 부덕하여 비를 내리지 않으니 부디 짐을 벌하시고 비를 내려 주옵소서’하고 빌었다. 정도전이 이루려 했던 나라와 세종대왕이 꿈꾸던 은덕(恩德)은 어디에도 비치질 않는다. 광화문 현판을 바꾼다고, 광화문 광장을 뜯어고친다고 정도전의 이상과 세종대왕의 꿈이 이루어지나? 광화문 광장에서 자리를 깔고‘모든 것이 내 탓이요, 나를 벌해 주시옵소서’라며 비는 임금이 보고 싶어진다. 

  문득 눈을 들어 세종대왕을 바라봤다. 세종대왕께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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