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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두산

  • 기사입력 2021.07.11 17:59
  • 기자명 이희영
▲ 방산 이희영(수필가) 

세월이 어수산하니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화재가 발생하고 있다. TV에 비치는 불타는 광경을 보니 옛 어린 시절 부산 용두산에서 살던 생각이 난다.

 어린 내가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에 내려온 것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용두산 판잣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어머니가 전쟁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낯선 땅 부산까지 내려와서 어디 한 곳 발붙일 데가 있었으랴! 피난민들이 하는 대로 용두산 언덕배기에 잠이라도 자야겠다고 만든 곳이 판잣집이다. 그런 집을 ‘하꼬방’이라고 불렀다. 일본어로 상자라는 뜻의 방(房)이란 말이다. 나무판자 조각으로 서로 엇붙이기도 하고 두꺼운 종이상자들로 누덕누덕 엇대어 만든 집이다.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움막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래도 그 안에서 잠도 자고 밥도 지어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매일 아침 국제시장으로 장사하러 나가셨다가 어둑어둑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돌아오셨다. 그리고는 나무에 불을 피워 저녁밥을 지으셨다. 우리는 어두운 방 안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전기가 없는 방안에는 늘 촛불을 켜야만 했다. 봄, 여름, 가을이야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하지만 남녘의 부산도 겨울엔 살을 에듯 추워서 두툼한 솜이불은 필수품이다. 불과 서너 평의 작은방 한 편에 이불을 쌓아두면 남는 곳은 별로 없다. 

 밥도 짓고, 추위를 면하려면 난로도 피워야 하고, 촛불도 켜야 한다. 불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용두산 언덕은 하루가 멀다고 매일 불이 났다. 크고 작은 불들은 매일 밤 일어나는 의례 행사였다. 불이 잘 붙는 판자와 종이상자로 지은 판잣집들이니 불이 나면 큰불로 번지기가 일쑤였다. 어머니는 만일을 대비해서 이불과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큰 보따리에 싸두어 항시 ‘출동태세’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어린 내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밤이 컴컴해지고 소방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나는 내가 맡은 짐 보따리를 들고 한길 한쪽으로 갖다 놓는 것이다. 한길은 용두산 꼭대기로 차가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머니는 “희영아, 너 이거 잘 지켜, 알았지!” 그리곤 다시 짐을 가지러 집으로 달려가신다. 겨울철이면 산언덕에 불어오는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 춥다. 캄캄한 밤중에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다. 저만치 판잣집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빛이 밤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그 광경은 어린 마음에도 무섭기만 했었다. 추워서도 떨고 무서워서 떨면서도 짐 보따리를 지키는 건 내 임무다. 그때는 6·25전쟁 직후여서 너 나 할 것 없이 물건이 귀해 웬만한 물건들은 좋건 나쁘건 다 훔쳐 간다. 더구나 한밤중에 불난리가 나면 불보다 더 무서운 건 도둑이었다.

 네다섯 어린 나이에 무슨 힘으로 짐들을 지키나? 나는 꽁꽁 언 두 팔을 쭉 벌리고 서서 어느 누가 내 보따리에 손을 댈세라 동그랗게 눈을 뜨고 지켰다. 그러면서 빨갛게 타오르는 불길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다시 짐을 들고 집으로 들어갈 때면 언덕배기를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셨던 어머니는 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 희영이 정말 짐도 잘 지키네!” 그때 내 기분은 늘 의기양양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기분이 좋았다. 또 그 다음 날 밤에도 어김없이 불이 났다. 소방차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나의 임무인 보따리를 들고 뛰쳐나갔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불이 났다. 또 또 또...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용두산 언덕배기 판잣집과 짐을 쌓아 놓았던 한길이었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그곳을 찾았다. 내가 살던 판잣집 터에는 나무와 수풀들만 무성했다. 군데군데 노란 꽃, 하얀 꽃이 웃으며 ‘왜 이제야 왔니?’ 묻는다. 한길로 오르는 오솔길에 잠깐 쉬었다 오르라고 긴 의자도 놓여 있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있나 보다.

 드디어 한길에 올랐다. 가슴이 벅차다. ‘아 여기가 거기구나!’ 예전의 흙길이 깨끗한 아스팔트 길로 변했다. ‘앵앵, 거리며 달려가던 빨간 소방차가 떠오른다. 눈보라 치던 밤에 곱은 손을 비비며 보따리를 지키고 섰던 앳된 사내아이도 생각난다. 한참을 서 있다 발길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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