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치망설존(齒亡舌存) 리더십 단상(44회)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속삭이는 노예'

  • 기사입력 2021.04.04 19:35
  • 기자명 김승동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법철학 서문(序文)에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고 적고 있다. 

미네르바(Minerva)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으로 황혼녘 산책을 즐겼는데 산책할 때 마다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왜 부엉이를 가까이 했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왜 황혼녘에야 날아올랐을까? 부엉이가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일까? 

부엉이가 어둑어둑해지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는 이 메타포(metaphor)는 ‘낮 시간동안 벌어졌던 세상의 온갖 복잡함과 변동이 어둠이 밀려오면서 가라앉은 시점에서야 비로소 그 세계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이러한 부엉이를 자신의 어깨에 앉혔다는 것은 부엉이를 귀 가까운 곳에 위치시켰고 귀 가까이 두었다는 것은 끊임없이 부엉이로부터 어떤 지혜를 들으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혜의 여신이 부엉이를 가까이 했듯이 로마의 권력자들은 ‘속삭이는 노예’를 가까이 두었다.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에는 장수(將帥)가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귀국하면 대대적인 개선행진을 하도록 했다. 

이 개선 행진식은 로마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광으로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많은 시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호를 받도록 함으로 그 순간은 영웅(英雄)을 넘어 살아있는 신(神)이 된다. 

그러나 개선장군이 타고 있는 전차에는 노예 한 명도 같이 타고 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Respice post te, hominem te esse memento”(뒤를 돌아보라, 당신도 죽게 되는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이는 전쟁에서 이기고 의기양양하게 개선하는 장군들에게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게 해 지나치게 우쭐하거나 자만심에 도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 옛날 도(道)를 닦아 고명(高名)한 인물들 중에는 집안 뒤뜰에 말뚝 하나를 박아놓고 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 자기를 가르칠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말뚝을 스승 삼아 거기에 절함으로써 오만(傲慢)에 흐르기 쉬운 마음을 가다듬은 것이었다. 

이 시대 모든 리더에게도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속삭이는 노예'가 필요하고 때로는 '말뚝 선생'도 활용하려는 결단과 지혜가 필요하리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