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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 “아동학대 근절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 암울”

정인이 사건 이어 아동학대 사망 사건 연이어 발생
아동학대 발생 때마다 대책 발표되지만 실효성 의문
근원적 대책 마련과 대대적 인식 전환 절실

  • 기사입력 2021.02.22 15:24
  • 기자명 김종대 기자
▲ 양모에게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이 사건'의 증인신문이열린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양모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어린 생명들이 안타깝게 눈을 감고 있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지가 빚은 아동학대의 산물이다. 아동학대를 근절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이에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국가적, 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NGO신문>이 아동학대의 원인과 근절방안을 긴급 진단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 공분 확산

지난 17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이날 ‘정인이 사건’의 증인신문이 열렸다. 시민들은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정인이 양모의 엄벌을 촉구했다. 생후 16개월의 정인이는 양모의 상습 학대 행위로 지난해 10월 사망했다. 경찰은 정인이의 양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현재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의 충격과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모 부부의 조카 물고문 사망 사건과 생후 2주 아이의 사망 사건이 연이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과 용인동부경찰서는 17일 A(10) 양의 이모 B씨(30대)와 이모부 C씨(30대)를 살인과 아동복지법상 신체 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A양은 친부모가 이혼한 뒤 친모가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자신의 동생(A양의 이모 B씨)에게 A양을 맡겼다. 

하지만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A양의 이모와 이모부는 지난 8일 “아이가 욕조에 빠져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당시 A양은 심정지 상태였다.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A양을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A양은 끝내 숨졌다. 병원 의료진과 구급대원은 A양의 몸에서 멍을 발견,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의 집중 추궁 끝에 A양의 이모와 이모부는 학대와 폭행 사실을 인정했다.경찰은 A양의 이모와 이모부가 훈육을 핑계로 지난해 12월부터 총 20여 차례 폭행과 2차례의 물을 이용, 학대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한 17일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생후 2주 아이 사망의 주범, 부모 D(24·남)씨와 E(22·여)씨에게 살인 및 아동학대중상해·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특히 경찰이 D씨와 E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D씨와 E씨의 몰염치한 행동이 밝혀졌다. 

D씨와 E씨는 익산시 소재 오피스텔에서 생후 2주 아이를 침대에 던지고 폭행, 아이가 의식이 없자 지난 9일 밤 119에 신고했다. 아이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다. 당시 아이의 얼굴과 머리 등에서 멍자국이 발견됐다. 이에 경찰은 D씨와 E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경찰의 분석에 따르면 D씨와 E씨는 119 구급대 신고 8시간 전 지난 9일 오후 3시께 휴대전화로 ‘멍 빨리 없애는 법’과 경기도 용인의 이모 부부 ‘조카 물고문 사건’을 검색했다. 검색 당시 아이는 분유를 먹지 못하고 토하거나 눈 한쪽을 제대로 뜨지 못할 만큼 다친 상태였다. 

구급대원 도착 이후에도 D씨와 E씨는 거짓 연기를 일삼았다. 아이가 반복된 폭행으로 호흡과 맥박이 없자 아이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의료진은 시신을 부검한 결과 아이가 이미 숨진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A씨와 B씨가 지난해에도 딸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점을 감안, 아동학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 진술을 반복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동학대 예방 대책 ‘도돌이표’···대책 실효성 ‘물음표’

정부와 정치권은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 정인이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확산되자 정부는 지난 1월 19일 제1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의 주요 내용은 아동학대 현장조사 거부 보호자에 1000만 원 과태료 부과, ‘즉각 분리제도(연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 대상 아동을 부모와 바로 분리)’ 시행, 아동학대 조사·아동보호 인력 확충 등이다. 

이어 법무부는 지난 19일 ‘아동 인권보호 특별추진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특별추진단은 법무부 장관 직속 기구로 설치된다. 아동학대·아동보호 실태 파악과 제도 개선, 아동학대 범죄에 관한 형사사법 대응 시스템 개선,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아동학대 대응역량 강화 교육, 아동학대 관련 통계 수집, 아동학대 재발 방지를 위한 관계부처 협의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대표 야당 국민의힘도 22일 ‘우리아이 지킴 5대 약속’을 제시했다. 신고 횟수와 상관없이 가정에서 피해 아동을 즉시 분리한다는 것이 골자다. 학대예방경찰관(APO) 별도 채용을 비롯해 아동학대방지기금 설치, ‘햇빛센터’(가칭) 설치, 초당적 범대책위원회 구성 등도 포함된다.

정인이 사건 이후 정부와 정치권의 아동학대 예방 대책 발표가 잇따르고 있지만 실효성은 미지수다. 과거에도 아동학대 예방 대책이 꾸준히 마련됐음에도 불구, 아동학대가 되풀이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2014년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 2019년 42명이다. 비록 사망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인천 서구 소재 공립 어린이집(이하 인천 서구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장애아동을 집단 학대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심지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에 따르면 인천 서구 어린이집은 지난해 11월 18일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 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했다. 또한 강선우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어린이집 평가 A등급 어린이집을 포함, 2020년 38개의 어린이집이 아동학대로 인증이 취소됐다. 

당초 어린이집 인증 평가는 평가인증 요청 어린이집을 대상으로만 진행됐다. 그러나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2019년부터 어린이집 평가제로 전환, 전체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A등급 평가 어린이집에서조차 아동학대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집 평가제가 아동학대 예방 효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강선우 의원은 “높은 평가를 받은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제도적 미비사항을 종합적으로 점검, 보완해 어린이집 평가제의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야 139명 국회의원이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지난 5일 발의했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지난 8일 기자회견을 갖고 법안 발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 김상희 국회부의장실]

근원적 대책 마련 절실···인식 전환 시급
지난 5일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김민석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포함, 139명의 여·야 국회의원이 ‘양천아동학대사망사건(정인이 사건) 등 진상조사 및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 등을 위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김 부의장은 “매년 끊임없이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법 개정과 대책 발표가 반복됐다. 이번 정인이 사건도 마찬가지”라면서 “전 국민의 분노와 안타까움 속에서 아동학대 관련 개정법이 다시 발의되고 지난 8일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인이 사건) 방송 보도 후 법안 제출·처리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정부도 보름이 안 돼 지난 19일 대책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김 부의장은 “정부와 국회는 중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기존 정책과 대응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되풀이만 했다”며 “이번에도 법안 제출과 처리가 있었고, 기다렸다는 듯 대책이 나왔다. 하지만 앞으로 제2의, 제3의 정인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확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아동학대 예방 대책 실효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근원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년 전 8세 소녀(빅토리아 클림비)가 학대로 사망하자 영국 정부와 의회는 진상조사단을 구성, 2년 동안 세밀하게 조사했다. 이를 통해 ‘클림비 보고서’가 수립됐고 이는 2004년 아동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2004년 아동법 제정 이후 영국의 아동복지, 의료서비스, 경찰 대응 방식이 대대적으로 개선됐다. 이러한 노력이 대한민국에서도 요구된다.  

김 부의장은 “(영국의 사례는) 대한민국에서 사건이 터지면 정부와 국회가 그때마다 내놓는 대책과 비교가 되지 않는, 아동정책의 근본적인 대전환이었다”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대한민국 아동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이에 따른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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