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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와 높이

  • 기사입력 2021.02.10 09:26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깊이와 높이

 

            김행숙 (1944년~ )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가장 물건이 잘 보이는 위치가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도 다르게 보인다

 

꽃에도 나무에도 정물에도

보기 좋은 각도가 있지만

 

사람에겐 특별히

잘 보이는 위치가 따로 없다

 

오묘하여 알 수 없는

사람의 깊이와 높이

 

평생을 걸려도 알 수 없어

그저 짐작만 할 뿐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닐라 해구와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도 이미 속속히 파헤쳐져 의구심을 풀어내었다. 그런 사람이 눈앞에 펼쳐진 사물의 명암과 원근에는 어둡다. 착시효과를 다 알지 못하여 각도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모양을 있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그린다. 그림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하여 형시상학적인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예술의 기초가 된 것도 이러한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사람인데 상대방을 전혀 모르는 게 사람이다. 보이는 대도 알 수 없고 감춰진 속은 더욱 알 수 없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존재한다. 이것은 누구도 풀지 못한 숙제로 많은 문학적 소재가 되어 왔다. 김행숙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배우며 원근과 음양을 알게 되었으나 가까이 있는 사람조차 그 속을 몰라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의문만 생기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개개인이 독립적이고 그 마음을 알 수 없는 존재다. 말과 행동으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믿는 수밖에는 묘수가 없다. 평생을 걸려 함께 가는 부부라 해도 짐작만 할 뿐이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하여 특별한 위치는 따로 없다는 시인의 말은 고백이 아니라 누구나 공통으로 갖는 철학적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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