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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12.25 09:17
  • 기자명 이오장 시인

              끝

                        김규화 (1939년~)

 가는 데까지 간다, 끝까지 간다

달아나든가 뛰어내리지 않고

그 직전까지만

 

끝은 처음에서 가장 먼 곳

운동장에서 달리기 할 때 꼴찌

면회가 끝난 죄수의 등

 

끝을 입에 붙이면 칼날같이 날카롭지만

끝 부러진 송곳같이 무딜 때도 있지만

 

끝까지 가면 습관이 된다

끝까지 가면 진리가 된다

끝까지 가면 죽음이 된다

 

끝에는 구석진 나의 집

위태롭지만 기댈 만한 나의 끝

결론부터 말하면 시작이 끝이다. 둥근 지구 위 어디에서 출발하여도 끝은 처음 시작된 곳이다. 처음을 모르는데 끝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시간은 가면서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으나 사람은 어차피 시간을 따라가는 시간의 자식이라 잠시도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그래서 처음과 끝을 구별하여 시간은 만들어졌고 출발점에서 끝을 모른 채 끝날 때까지 가는 것이 사람이다. 만약 사람의 수명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아닐까. 김규화 시인은 시작한 지점을 기억하고 끝나는 지점을 확실하게 짚은 것 같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습득한 고뇌의 지혜로 끝을 본 것이다. 가는 데까지 뛰어내리지 않고 정확한 착지점을 찾아가겠다는 고백과 끝까지 가면 습관이 되고, 진리가 되고, 죽음이 된다는 것을 알아챘다. 칼날 같고 송곳 같지만 시작할 때의 첫걸음에서 이미 끝을 알아본 것이다. 누구나 끝은 두렵고 힘들다. 알아챈 사람은 더욱더 그렇다. 끝에 있는 구석진 집까지 위태롭게 걸어가 기댄다는 고백이 얼마나 힘든 여정을 걷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여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것이 시인이 쓰는 시의 역할이다.   

▲ 이오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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