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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가사 잘못 알려졌다

  • 기사입력 2020.08.31 19:48
  • 기자명 이용수 판소리 전문가

아리랑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모일 때마다 즐겨 부르다보니 애국가보다도 더 자주 부르게 되고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민족 노래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 알고 부르는 아리랑 가사 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내용이 본래의 어떤 아리랑 노래에도 없던 가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강원도아리랑, 밀양라리랑, 진도아리랑 등 어떤 전통 아리랑 가사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또 한국을 가장 사랑했던 헐버트( Homer B. Hulbert) 박사가 1886부터 아리랑을 채집하고 1896년에 최초로 발표한 아리랑의 악보와 가사를 보아도 그런 내용은 없다.

과거에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연해주로 이민 간 사람들의 몇 대 후손들이 자주 불렀던 ‘고려인 아리랑’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세계 1차 대전 중 한 독일 교수 FWK 뮬러(Mueller)가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251개 민족의 언어와 노래를 채집한 가운데 러시아에서 잡혀 온 고려인 4명에게서 채집한 고려인 아리랑에도 그런 가사는 없다.

외국에 나가 있는 우리 겨레들이 모이기만 하면 아리랑을 부르다 보니 함께 한 외국인들도 많이 알고 좋아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아리랑 곡에 찬송가 가사를 붙여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에서도 그 가사를 채집하여 연구한 사람들이 있는데, 채집된 모든 자료를 살펴봐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는 아리랑 가사는 없다.

다만 1914년 이상준(李尙俊)의 『조선속곡집(朝鮮俗曲集)』에서 이와 비슷한 ‘십리를 간다고 찌걱거리더니, 오리도 못 가서 발병 났네’라는 가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그 가사는 언제, 어떻게 나온 것일까?
1926년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만들면서 영화주제가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는 내용을 임의로 붙였다. 나운규가 고향 북한 회령에서 소학교 다닐 때 남쪽에서 올라간 철도공사 노무자들이 서러운 가락으로 불렀던 아리랑 노래가 너무나 심금을 울리고 좋았기에 남으로 내려 온 후로도 그 아리랑을 듣고 싶었으나 듣질 못했는데, 마침 영화 아리랑이 서러움을 담은 영화이므로 에로틱한 서러움을 잘 표현하기 위해 이상준의 가사를 응용하여 그렇게 붙인 것이다.

마침 당시 일제의 압박에 대한 설움이 북받치던 국민들에게는 항일 정신을 담아낸 무성 영화 무대서 직접 서럽게 부른 가수 유경이의 '아리랑' 노래를 듣고 목 놓아 울기도 했다고 하며, ‘님’을 조국이나 임금 등의 의미로 해석하면서 부르면 가사도 어우러지므로 이 노래가 널리 퍼져나가니 일제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고심하다가 민족혼을 비하시키는 쪽으로 이용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일제는 1930년에 나운규가 붙인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 운운하는 가사를 살리고, 원래 없던 노래의 제목에 ‘我離娘’이라는 한자를 억지로 만들어 붙여 ‘내가 여자를 차버리고 떠난다’고 왜곡 해석하여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싣고 그렇게 교육시키라고 지시했다. 본래 아리랑은 한자가 없고, 천손족을 의미하는 ‘하늘의 아들’이란 뜻의 ‘아리아’와 연결되는 단어였는데, 이렇게 왜곡해버린 것이다.

여기다가 1931년 발행한 나운규의 ‘영화소곡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가사가 실림으로써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알려져 그대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아는 필자는 그런 가사의 아리랑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본래 한민족이 자신을 떠난 임이 못 되기를 바라는 그런 옹졸하고, 앙갚음이나 하는 민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민요를 그런 식으로 왜곡된 가사로 불러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관계 전문가들과 정부에서 가사를 고쳐야 한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최소한 우리가 그렇게 부르더라도 제대로 알고나 불러야 하겠다.  

                               

  

 『조선소곡집』에 실린 나운규의 ‘아리랑’영화 주제곡 ‘아리랑’ 악보와 무대에서 부른 가수 유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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