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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의 길

  • 기사입력 2020.08.22 15:52
  • 기자명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최근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노조문제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논란에 대하여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

그 자리에서 이부회장은 앞으로 자녀들에게 경영을 승계하지 않을 것이며 삼성그룹도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발표가 나간 후 매스컴을 통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본인은 좀 색다른 견해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본인은 삼성그룹의 경영내용이나 이건희 회장 일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직간접적인 이해관계도 없음. 단지 평범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임).

매스컴을 통해서 보는 이 부회장의 인상은 참 좋다. 덩치도 크고 인물도 준수하다. 아직 50대 초반의 한창 나이라 앞길도 창창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 그 사람이 풍기는 용모나 후한 품성(?)으로 볼 때 짐이 너무 크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이혼까지 겪고 나서 홀아비 신세가 아닌가. 지금처럼 각자의 사생활이 투명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숱하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기도 어려울 터. 이래저래 이 부회장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측은하다는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오너경영이 좋으냐, 전문경영이 좋으냐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경영권 세습 문제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런 문제는 어떤 방식이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편법이나 탈법,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정당한 절차와 방법에 의해 좋은 경영진을 구성하여 기업경영을 잘하면 된다는 원칙적인 입장이다.

이건희 회장 직계 가족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언론의 보도를 토대로 어림잡아보면 주식만 해도 30조원은 족히 된다. 물론 여기에는 비공개주식이라든가 개인 소유 부동산 외에도 에버랜드,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 삼성병원 등은 제외된다. 삼성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국보나 보물만 해도 수십 점, 수백 점이 될 뿐 아니라 현금 가치를 매길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수많은 유무형의 재산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잘 관리하고 있을까. 정작 주인이 파악조차 못하는 재산이 많이 있지 않을까.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장기간 병석에 있는 분을 거론해 뭣하지만 되돌아보면 어떻게 살았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인생의 종반부에 와서도 전과 다름없이 온갖 책임과 권한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던 삶의 방식이 옳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많아지고 건강이 나빠지면 그동안 지니고 있던 갖가지 속박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무엇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일까? 그렇게 하자면 손을 떼야 하는 일은 어떤 것일까?

첫째, 삼성의 현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명한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이다. 모르긴 해도 삼성 그룹의 공개 비공개 계열사, 공익법인, 개인 소유 유무형의 자산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어두운 부분들이 있고 건드리면 문제가 드러나는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그 중에는 편법이나 불법적인 요소도 있어 수시로 일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는가?

삼성의 기업지배구조만 해도 이번에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이것은 사실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늦을수록 대가가 커질 소지가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계열사마다 운영의 독립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국내외 투자가와 국가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 법령이 지켜지고 편법 등 의혹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둘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서둘러 확대 도입해야 한다. 각 계열사 사장의 경영인으로서의 자세가 그룹 총수가 있고 없고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그룹 총수의 역할을 확실하게 줄여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여기서 ‘소유하지만 지배하지 않는다’는 원칙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별도 재단을 설립하여 대주주 역할에 충실하라고 한다. (*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법령 등 제약이 많아 여기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음)

가끔씩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는 가훈 아래 지난 150여 년 간 최대 주주이면서 경영권을 가지지 않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의 예가 거론된다. 또 빌게이츠의 경우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는 10여 년 전 50세 초반의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잘 나가고 있는데도 최고 경영자의 자리를 내어놓고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하였다. 놀라운 것은 그가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에도 그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계속 올라 지금도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는가.

셋째. 이부회장 개인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번에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건 적어도 20-30년 후의 얘기이다. 또 너무 뻔한 소리라서 한가하게 들리기도 한다. 아니 그렇다면 또 다시 경영권을 세습할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제 대재벌의 경영권 세습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해관계가 많이 걸려 있어 여간한 배짱이 아니고는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는 극구 말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그룹이나 이 부회장을 생각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본인을 위해서 하는 면도 있다고 본다.

필자는 몇 년 전 소설 <이정구>를 통해서 이건희 회장의 미래를 제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이 부회장에게 앞으로 적당한 시기에 삼성의 경영권을 내려놓으라고 얘기하고 싶다. 당장은 어려움이 있어도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삼성과 이 부회장 개인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삼성의 경영을 한 단계 올리는 면도 있을 것이고 이 부회장 개인의 행복을 찾아가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삼성의 경영에서 손을 뗀다고 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앞서 얘기한 스웨덴의 모델이든 빌 게이츠의 예든 구체적인 방법은 본인이 찾을 일이다. 그것이 그에게 지워진 과도한 짐을 덜어내는 길이 될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보다 행복한 삶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막대한 가문의 부를 온전하게 지키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장기간 병석에서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경우를 잘 살펴보라. 소유하고 있는 온갖 것을 어지럽게 늘어놓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지 않는가. 참 억울하게 생각되는 건 가진 것의 혜택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한 채 온갖 의혹과 비난을 받는 일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없다면 그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본다.

필자는 요즘 나이가 들면서 무상無常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세상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일생은 결국 허무할 수밖에 없다. 공자도 불혹不惑(40) - 지천명知天命(50) - 耳順(60) - 從心~(70) 등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계속 바뀐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철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삼성의 지속적인 발전과 이재용 부회장의 개인 행복을 위해 해 본 소리이니까 오해 없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박경리 작가가 돌아가시기 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고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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