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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이정구

  • 기사입력 2020.08.22 15:47
  • 기자명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영탁

요즘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 열기가 대단하다. 얼마 전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히트를 치더니 뒤이어 미국 헐리우드에서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완전히 판을 뒤집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국제영화상과 각본상을 한꺼번에 수상함으로써 4관왕에 오른 것이다. 칸이 작품성을 중시한다면 아카데미는 오락성과 상업성을 중시한다는데 기생충은 이 모두를 석권한 셈이다. 한국영화 100년 역사를 맞이하여 이룩한 쾌거로서 우리 영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희소식을 두고 딴 소리를 하는 것 같아 뭣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하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이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간의 불평등 문제를 이런 식으로 보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고 난리인데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하는 행동이냐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칭찬과 박수 일색이냐는 것이다.

차제에 어떤 영화가 좋은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재미가 없다면 누가 돈을 내고 보겠는가. 그리고 내용이 교훈적이어야 할 것이다. 재미가 있으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거기다 영화의 제작이 신기술이나 새로운 방법을 동원해 만들어졌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기생충은 이름부터가 좀 이상하다. 영화의 내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 문제를 다룬 건 좋은데 그 내용을 보면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영화에 나오는 못가진 자를 기생충으로 지칭했을 텐데 그렇다면 문제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그토록 나쁜 사람들이라는 건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그냥 그렇게 표현했다는 건지 의아스럽다. 기생충이란 자극적이고 혐오스런 이름을 붙였는데도 우리 사회의 일각 특히 시민단체 등에서 문제 제기가 없는 걸 보면 그것도 의아할 뿐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나쁜 짓을 많이 한다.있는 사람을 속이고 조롱하며 온갖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네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정한다. 기생충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그러면서도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기생충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없는 사람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단 말인가. 더구나 가진 자들을 향해서는 더욱 그렇단 말인가.

기생충이란 영화가 이런 식으로 스토리 전개가 되는 걸 보고 나니 본인이 몇 년 전에 쓴 소설 이정구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이정구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자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인 이씨, 정씨, 구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결국 이정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업의 오너로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나이 70에 접어든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룬 이야기이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 1% 대 99% 간의 갈등이 계속 커지는 사회에서 가진 자의 대표 이정구가 결단을 내려 모범을 보인다. 앞으로의 세상은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빠른 가운데 승자독식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문제를 외면하거나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서로 책임을 미룬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해답은 문제의 소재에 대해 왈가왈부 할 것 없이 가진 자가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고, 솔선하는 것이다. 이를 가진 자의 대표 이정구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실천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소설 이정구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것 없이 형편이 나은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결과 지향적이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지식보다 인성이나 품격이 더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여전히 무조건 외워서라도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결과를 최고로 여긴다. 그런 식의 현상이 이번 기생충에서도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영화의 내용을 따질 것 없이 세계시장에 나가 1등을 했으니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최고라는 식의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평소 꿈도 꾸지 못했던 1등을 차지했으니 그 내용이나 과정은 아무래도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배려인가. 불평등 문제가 나오면 속으로 거북해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계층조차도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참으로 의아하다.

일등만 하면 누구나 다 좋아하고 부러워하는 우리들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념관 운운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순 없지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싶다. 영화는 보지도 않고 큰 상을 받았다니 무조건 박수를 치는 건 아닐까. 결국 우리 사회에서 사람마다 생각이 서로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마저 드는 건 필자만의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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