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본인 결혼이주여성이 전하는 한·일 양국의 과거사

  • 기사입력 2020.08.22 15:32
  • 기자명 이진경 JG사회복지연구소 소장
▲ 이진경 소장 

며칠 전, 제75주년 광복절이 지났다.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날을 잊을 건가’ 광복절 노래 가사 중 일부를 흥얼거리며, 광복 후 ‘재한일본인 처’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을 떠올렸다.

이들이 한국에 살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 일본이 조선과 한 몸이라는 뜻으로 조선인의 정신 말살과 착취와 동화를 위한 내선일체(內鮮一體) 구호에서 시작된다.

여기엔 일본인 여자가 주도하는 가정에서 자녀의 가정교육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인식으로 여성의 역할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일본여성들은 전쟁에 나간 남성들로 인해 혼인 할 일본남성이 부족하다보니 1940년 초 일본 탄광지대와 공장 등에 징집된 조선인들과의 결혼을 장려했고 국제결혼이 자연스러웠던 점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방을 맞이하게 된 조선인 남자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위해 나섰다. 이때, 부모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에 따라 들어온 여성들은 남편에게 이미 부인이 있거나, 마음이 돌변해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고, 버림받은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고국에서는 일본의 만행과 조선인들의 피해를 전혀 몰랐었다며 한국에 와서야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됐고 평생을 ‘가해 국민’이라는 마음의 짐으로 죄인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일 간 국교 정상화를 이룬지 반세기가 지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반일 감정의 소용돌이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양국에서 모두 소외당하고 잊혀 졌지만 그들 중에는 “한국 고아 입양과, 적십자사에서 평생 봉사활동, 무의탁 노인이나 군부대, 감옥으로 위문을 다녔고, 부모 없는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 등에 힘썼다.”고 강제징용 피해자의 아들인 사진작가 김종욱씨는 전한다.

일본은 전쟁으로 자국민 여성까지 피해자로 만들었으며, 이들의 삶과 모습은 두 나라의 평화와 생존을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할 다문화사회의 필연적 관계를 보여준다.

70여 년 가까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이었지만 힘겨웠던 적응은 현재 시점의 결혼이주여성 모델로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이다. 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다문화사회라는 변화에 갈등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문화의 조화로운 방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이주에 대해, 미국 사회학자 사센(Sassen)은 “글로벌한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이주여성은 단순히 구조적인 희생자가 아닌, 젠더와 인종, 계급의 상호교차점에서 유동적으로 변해가는 주체성(subjectivity)의 소유자”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도 과거사를 알리는 일본인 결혼이주여성을 보니  맞는 말이다.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의 동국사에 일본 불교 종단인 조동종(曹洞宗)이 조선을 강제 지배한 역사를 반성하면서 적었다는 ‘참회와 사죄의 글’ 참사비를 열심히  읽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그 사찰경내에는 처음으로 2015년 세운 ‘평화의 소녀상’도 있어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그들에게 과거사의 진실을 전하고 있는 일본인 결혼이주여성이다.

또한 일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인 결혼이주여성도 있다. 이들을 통해 전해지는 양국 간 과거사는 배운바가 없어 몰랐던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진다며  보람있다고 말한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양국 간의 역사에서 적대적인 친구들의 반응으로 상처받는 일은 다반사다. 그래서 역사공부를 했고 행동으로 실천하게 됐다고 한다. 이제 단일민족, 피해민족의 관점을 벗어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초등학교부터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인자녀에게 "너네 엄마 일본여자니까 일본으로 꺼져버려" 라는 감정 부각이 아니어야한다. 한국사회를 이해해 역사의 진실을 전파하도록 돕고 더욱 확장되는 다양한 가족들은 돌봐야 할 취약계층이 아닌 외교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재한일본인처로부터 일본인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 사랑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