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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와 지족, 창조의 상징 '청도의 처진소나무'

  • 기사입력 2020.05.28 23:24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기자

문화재 :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5호)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 151-6/ 운문면 신원리 1768-7번 운문사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청도 매전면 금곡리에 동창천 우연(愚淵)의 언덕 위에 조선 시대 별장인 삼족대를 둘러보고 20번 국도를 따라가던 중에 도로변에 처진소나무를 보게 되었다. 산이나 해안 등지에 자라는 소나무 종류는 금강송, 리기다소나무, 곰솔(해송) 등이 대부분인데, 이곳 동산리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일반 소나무와 다른 수형을 가진 소나무이다.

소나무 품종은 금강송과 처진 소나무, 산송, 황금나무, 다행송이 있다. 금강송은 강송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줄기가 곧고 측지가 짧아서 수관이 좁고 눈이 많은 태백산맥 등에서 자생하고 있다. 처진소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수형을 가진 것인데 접목으로 이 형질이 유전되며, 매전면 처진소나무는 우리나라 처진소나무 중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가졌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떨어질 수 없는 생활이 이어져 왔다. 땔감이 없을 때는 낙엽이 된 소나무 잎을 땔감을 했었고, 죽은 소나무의 옹이로 불을 지피는 데 사용하였고, 어둠을 밝히는 데 사용했었다. 또한 소나무로 숯을 구워 만들고, 숯덩이로 화롯불을 피웠다. 사람이 태어나면 집안 출입을 통제하는 금줄을 칠 때도 푸른 솔가지가 꽂히고, 혼례식을 올릴 때도 초례상에 솔가지가 꽂히고 사람이 죽으면 소나무 관을 짜서 사용하였다. 예부터 소나무는 수많은 전설과 그림, 문학작품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임은 물론 고향 생각을 할 때 늘 떠오르는 것이 마을 동산에 우뚝 솟아있는 노송 한그루이다.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줄기  

소나무는 고향을 지키지만,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은 뿔뿔이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고향의 당상 소나무를 생각하고 소나무 숲을 생각하며 시름을 달랜다. 지금도 자식을 객지로 보낸 어머니가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당산나무가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 민족은 솔잎의 푸른색을 절개와 지조, 창조의 상징으로 보았고, 줄기의 붉은 빛은 단청의 원류가 되었다. 소나무는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十長生:해·산·물·돌·소나무·달 또는 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의 하나였으며 액을 막아주고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상징물이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솔가지를 꺾어 문에 걸어두어 잡귀와 부정을 막았으며, 동지 때는 솔가지를 사용해 팥죽을 사방에 뿌리며 질병을 막았고, 아기를 낳은 뒤나 장을 담글 때도 솔가지는 빠지지 않았다.

오두막집을 지을 때나 궁궐을 지을 때도 격을 두지 않고 집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였다. 배를 만드는 선박재도 소나무였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밥을 짓는 땔감이었으며, 농기구의 재료였고 부엌살림의 대부분도 소나무였다. 한국인의 삶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면서 끝났다.

소나무는 옛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지 않고 훌륭한 예술의 소재였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 정선의 '만폭동(萬瀑洞)', 김홍도의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총석정(叢石亭)', 김한동의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에는 소나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또한 문학작품에도 소나무가 자리한다. 사명당의 푸른 소나무를 바치는 헌시 '청송사(靑松辭)', 이퇴계의 '영송시(詠松詩)', 유헌주의 '영송도(詠松圖)',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등 소나무가 중심이 되어 있다.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 가지  

한국의 마을 이름에도 소나무 ‘송(松)’자가 들어간 곳이 619곳이나 된다고 한다. 늙은 소나무가 있다고 하여 영암의 노송리(老松里), 멋진 소나무가 있는 가송리(佳松里), 큰 솔의 대송리(大松里), 향기 나는 방송리(芳松里),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 삼송리(三松里), 검은 소나무가 있다고 하여 흑송리(黑松里)라 부른다.

고유명사로 이름을 가진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 '정부인(서원리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352호) 소나무', '논개 소나무(의암송, 천연기념물 제397호)' 등과 백두산의 미인송(美人松), 태백산줄기의 금강송(金剛松), 조선 시대 궁궐에서 관리했던 황장목(黃腸木), 곰솔, 반송(盤松), 춘양목(春陽木) 등 산지와 생김새, 소유자 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 것이 한국의 소나무다.

동산리의 처진소나무는 가지가 수양버들같이 처진다고 유송(柳松)이라 부른다. 나이는 약 200년으로 도로에서 약 8m 떨어진 아래 언덕진 곳에서 자라고 있다. 이 소나무가 이곳에 자라게 된 것은 원래 묘소 주변에 있었던 소나무로 약 10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현재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약 14m이다.

처진 소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수형을 가진 것인데 접목으로 형질이 유전된다. 현재  우리나라 처진 소나무 중 가장 전형적이고 희귀한 것 중의 하나이다. 전체의 모양이 균형 잡히지 않는 모습 같지만, 한쪽으로 기울여질 듯하면서도 전체의 균형을 위해 아래쪽의 처진 가지가 서쪽을 향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동쪽으로 처져 있다가 다시 상부에서는 갓 모양으로 하고 있어 균형을 유지하는 것 같다.

처진 가지는 힘이 없어 보이지만, 가지는 힘차게 많은 잎을 잡고 있다. 소나무가 서리와 눈을 이기고 늘 푸르다는 것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와 강한 절개를 상징한다. 척박한 땅에서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무성하게 자랐지만, 오히려 숲이 풍요해지면 풍요해질수록 쇠락의 길을 걷는 게 소나무이다. 들판에 홀로 남은 처진 소나무는 처음부터 가지가 처져있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소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가지와 가지와의 복잡한 관계로 지금의 소나무 한데 변형이 오지 않았나 한다.

대부분의 소나무가 멋지고 소나무답다고 하면 기암절벽의 높은 곳에 있어야 소나무답다고 하고 들판에 비바람과 눈에도 이겨내며 홀로 서 있는 낙락장송일수록 소나무답다고 한다. 매전면의 처진소나무는 낙락장송으로 소나무답게 살아오고 있다. 버드나무는 물이 흐르는 낮은 평지를 찾고 바람이 불어 버들가지가 흔들려야 비로소 버들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처진소나무는 비바람과 백설을 몸에 짊어져야 소나무가 된다.

처진소나무 옆에는 자동차도로가 있어 지날 때마다 매연을 날린다. 처진소나무는 매연을 모두 몸에 담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늘 푸른 잎을 내고 있다. 솔잎은 2개로 엮어져 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흙이 되는 그날까지 솔잎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평생을 간다. 금실 좋은 부부를 솔잎에 비유하고 솔잎을 부부애의 상징이라고 한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청도 운문사에도 약 500살의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가 있다. 경내 만세루 옆의 넓은 공간에 소나무 여러 그루가 빼곡히 자라고 있는 형상이다. 땅 위에서 약 2m쯤 되는 곳부터 줄기가 수평으로 뻗어 있다. 높이와 비교해 옆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어 수십 개의 지지대를 세워 보호하고 있다. 전체의 모양이 마치 우산을 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가지가 처져있는 소나무 중에 최대이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이 소나무가 이곳에 심어지게 된 것은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시들어 있는 소나무 가지를 땅에 꽂아 생명을 주어 사렸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옛날 호거산(虎踞山) 운문사 뜰 평탄한 곳에 한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소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줄기  

임진왜란 때 사찰건물은 불타 없어졌지만, 이 소나무는 칡덩굴로 감겨 있어 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의 높이는 약 6m에 이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8.4m, 서쪽이 9.2m, 남쪽이 10.3m, 북쪽이 10m에 달한다.

우산을 펴 놓은 것 같아서 여승들이 수십 명씩 이 소나무 아래에 둘러앉아 강론을 듣기도 하였다고 한다. 봄이 되면 막걸리 12말을 물 12말에 타서 이 나무뿌리에 부어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막걸리가 나무에 좋은 비료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행해지는 행사이다. 막걸리가 나무의 비료 역할을 한다는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봄철 가뭄에 나무에 물을 주는 효과와 같다고 본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가지  

매전면 동산리의 처진소나무와 운문사 처진소나무 외에도 경기도 고양시 노고산리에 250년 된 처진소나무가 하나 더 있었으나 1936년에 고사하였고,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의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409호)와 청도군 풍각면의 원봉리, 안산리, 각북면 등에서 야생으로 자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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