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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인간의 자존심

  • 기사입력 2019.11.17 22:01
  • 기자명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얘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왜냐하면 내용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양자의 관계가 무관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서로 보완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과학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종교의 영역이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과학의 발달이 종교의 입장을 난처하게 한 점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준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예로부터 인간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난 인류역사를 보면 만물의 영장으로서 과학의 깨우침에 따라 창피를 당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세 가지를 정리해보자.

 

첫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다. 그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알렸다.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던 천동설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둘째,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우주 만물은 신의 창조물이라고 믿고 있던 것을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이를 통째로 부인하였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진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셋째, 프로이트의 무의식론이다.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의식은 10%도 안 되지만 잠재적인 무의식은 90%를 넘는다. 이처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의식보다는 물속에 감춰진 거대한 무의식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무의식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존재라고 한다.

 

이상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지동설, 인간이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라는 진화론, 내가 나의 온전한 주인이 아니라는 무의식. 결국,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란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리 실망할 건 없다. 이 아무것도 어닌 것이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이다. 가끔씩 바보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답지 않는가. 아무리 인간이 바보스러워도 이 세상에 인간보다 우수한 존재는 없지 않는가.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는 좀이다. 자칫 하다가는 인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찌 되었든 간에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무지도 많이 깨우쳐졌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그만큼 현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무어의 법칙에 따라 기술발전이 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끝은 어디인가. 레이 커즈와일은 인간의 영생이 가능해지는 싱귤래리티(특이점)가 다가오고 있다고 했고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신이 될 거라고 했는데 무슨 소리인가.

 

지금 인공지능의 발전이 예사롭지 않다. 얼마 전 손정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 한국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 분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직은 계산이나 바둑처럼 한 가지만 잘하는 약인공지능 단계이지만 장차 강인공지능을 넘어 초인공지능 단계로 가면 인간의 존재는 쓸모가 없어질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 발명, 혁신을 기계가 담당함으로써 인간은 뒷전으로 밀린다. 인간보다 우수한 기계가 밤낮없이 쉬지 않고 일만 할 텐데 무슨 수로 당해낼 것인가.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일만 빼앗아 가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있다. 인류의 역사가 언제나 힘센 자와 가진 자의 역사라고 본다면 이제 곧 인간의 역사가 끝나고 기계인간의 역사가 시작될 거라고 한다. 하기야 지금까지 존재했던 종의 99.9%가 멸종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인간의 멸망도 일어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시대를 앞선 사람들의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킬 거라고 하였고 일론 머스크는 우리가 악마를 부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볼 때 인간이 당하는 네 번째 창피는 창피를 넘어 스스로의 죽음 나아가 온 인류의 멸망이다. 이보다 더한 수모와 비참함이 어디 있는가. 자기가 애써 만든 기계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그런 줄 알면서도 여전히 인공지능 개발에 여념이 없는 우리 인간들이다. 인공지능의 초기 단계에는 인간의 통제가 가능하겠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자기를 만들어 준 인간을 모조리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걸 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가.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빌게이츠의 말처럼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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